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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20. 2020

책에 남은 흔적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2019)


독서모임을 갔는데 누군가가 김애란 작가의 책 이야기를 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이었다. 나도 우연히 집에 꽂혀있어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김애란 작가의 책을 읽고 싶었다. 소설은 이미 다 대출 중이었고 산문이 있었다. 잊기 좋은 이름, 이라는 산문집이. 


소설처럼 산문집도 잔잔하구나 하며 읽어 가던 와중에 내가 나온 학교 이야기가 나와서 속도를 늦추었다. 이야기는 작가가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책에서 흔적을 발견한다. 그 책을 공부했던 학생들의 흔적을. 92학번과 90학번 학생들이 언어학사라는 책에 남긴, 아마 그 흔적을 남긴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을 그 둘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노래하는 글을, 2020년에, 그 학교의 중앙도서관에 앉아서 읽는다. 그들은 어땠을까? 그들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연인이었던 그들은 아마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곳, 중앙도서관에도 들리지 않았을까. 어리고 젊은 두 대학생이 왠지 내 곁에서 속삭이는 것 같다.


그들은 내가 걸었듯, 이 캠퍼스를 거닐었겠지. 내가 있는 이 곳에 왔었겠지. 아니, 나보다도 더 먼저 있었겠지. 내가 태어나던 시기에 대학에 입학해서 젊음을 만끽했을 그들이 궁금하다. 그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서 보냈을 청춘이 궁금하다. 


글을 통해서 모든 세대가 하나로 이어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라는 공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흔적을 얼마나 많이 남겼을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나와 같은 책을 먼저 읽은 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는데 이번 책은 내가 거닐었던 공간을 먼저 걸었던 이들을 궁금하게 했다. 


공공도서관이 열지 않았다는 핑계로 졸업을 하고 모교로 온다. 휴직을 했으니까. 방학이라는 생각으로. 대학교 때는 방학 때 책을 읽지 않았으니 지금 마치 대학교의 방학인듯 학교에 온다. 이렇게 학교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아득한 마음이 든다. 


스물아홉의 내가 아니라 스물 두살의 내가, 스물세 살의 내가 캠퍼스를 걷고 있는 것 같다. 육체는 스물아홉인데 마음은 아직도 이 곳에 익숙한 20대 초반의 나로 남아있는 거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맑았던가, 부모와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의 나는 얼마나 도화지 같았던가. 


나의 흔적도 김애란 작가가 그러했듯,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있을까? 내가 한 번 읽고 팔아버렸던 전공 서적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까? 어딘가에서 나의 후배가 그 책을 보고 공부하고 있을까? 그리고 아 이 선배, 누군지 몰라도 진짜 전공 안 좋아했나 보네, 하고 웃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을 거닐었을, 김애란의 산문집에 나오는 그 두 명의 선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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