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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24. 2020

자취방, 그 공간에 대하여


며칠 전 자취방의 화장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다. 배설 공간(화장실)과 삶이 너무 가깝다는 거였다. 화장실에서 바라본 내 삶의 공간이 너무 가까웠다. 아파트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니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화장실과 내 생활공간의 거리를 생각조차 못했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가장 예쁘지 못할 때가, 미관상으로 예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보기에 좋지 않은 때는 본능을 만족시키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중에 제일은 배설욕이다.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욕구다. 


그 극도로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는 공간이 삶의 나머지 99%를 채워나가는 공간과 너무도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한 거다. 그 거리를 인지하고 나니까 뭔가 좀 씁쓸했다. 이 곳이 싫은 건 아닌데, 아 이게 어린 시절 미디어에서만 보던, 20대의 주거공간이구나, 라는 생각.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은 그런대로 꽤 넓은 편인데도 그랬다. 방도 두 개고 거실과 부엌의 중간인 어중간한 거실도 있는 곳이다. 화장실은 방 바깥의 공간, 거실과 딱 붙어있다. 거실에서는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는 배설을 한다. 그 공간의 사이가 너무도 가깝다. 


보통의 원룸은 대체 얼마나 가까울까. 예전에 가봤던 오피스텔의 원룸은 화장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냉장고와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부엌이라는 공간 자체가 없다. 화장실과 거주 공간을 나누는 1m도 되지 않는 거리와 화장실 문은 그 어떤 경계도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간에서 살고 있는 걸까? 삶이 아니라 그냥 생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언어, 국어를 사용하지만 말에는 개성이 있다. 화자의 평소 생각, 삶의 태도, 가치관이 드러난다. 나는 자취하는 공간을 말할 때, 그러니까 서울의 주거공간을 말할 때 '자취방'이라고 말한다. '자취방은 ㅇㅇ에 있고, 원래 집은 ㅇㅇ에요'라고 말한다. 본가는 '집'인데 자취방은 그저 '방'이다. 


방 한 칸이라서? 아니다. 방 개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없어서? 이 또한 아니다. 오히려 옷가지나 식기도구, 노트북은 집보다 훨씬 더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취방은 집이 아니다. 방에 불과하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이런 '방'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큰 집에서 살고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 자취를 한다고 말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집 향기 없는 방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공간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동생은 자취만 할 수 있다면, 부모와 떨어져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할 거라고 했었다. 가족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독립을 했고, 자취방에서 매일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방 한 칸은 인생을 채우기에 어딘가 부족하다. 자취 반년을 조금 넘어가는 내 자취방에 대한 소회는 그렇다. 휴직 중이라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철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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