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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미한 사피엔스

by 만재소녀

사피엔스가 유명해진 이유는 뭘까.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읽고자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벌써 세번 째 읽는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한다. 너와 나는 매일을 너와 나로 살아가지만 본질은 알지 못한다. 며칠 전에 적었던 일기 조차 지금의 내 생각과 다르다. 인간은 꽤나, 생각보다 더 많이 가변적이다. 나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해도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존재할뿐이다. 다른 동물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해서, 생존에 유리해서 살아남았을 뿐, 우리의 의지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삶의 목적도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일종의 관념에 불과하다.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에 그저 던져진, 태어나게 된 존재일 뿐이다.


책을 읽다보면 인간 존재에 대한 다소 회의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유발 하라리가 인간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되려 무의미의 축제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유의미함을, 그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인류의 역사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개인이 있다. 수 만 명의 네안데르탈인이 있고 사피엔스가 있다. 글로 적어내기에는 모자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를 살다 사라진 수 많은 존재들이 있다. 나의 삶 또한 먼 훗날 내가 아닌 밀레니얼 세대, 코로나를 겪은 하나의 세대로 묘사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세상의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 생겨난 사피엔스 중 한명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사피엔스를 읽는다.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유전자의 기원을 이해하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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