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소녀 Aug 22. 2020

인간의 이야기, 동물 농장

동물농장, 조지 오웰 (1945)


온갖 풍자와 비유와 은유가 있는 글. 청소년 필독서로 처음 만났을 때는 진짜 동물농장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고 동물 이야기네, 하고 덮었던 기억이.


러시아 혁명이 배경이고, 나폴레옹이 스탈린이고 하는 그런 설명을 떠나서 나는 민중이 얼마나 쉽게 선동되는지를 봤다. 그리고 민중은 얼마나 우매했는지. 대부분의 민중은 얼마나 무지하며, 그나마 조금 깨어나려고 하는 소수의 사람조차 얼마나 쉽게 다수의 압박에 의해 입을 닫게 되는지 말이다.


권력자의 횡포에 공감하기보다는 민중에게 마음이 갔던 것은 내가 그들이기 때문일 거다. 이 소설에서 그들은 말 그대로 몇 명 되지 않지만 실제 사회 내의 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소수의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그들 사이에도 생각의 차이가 있다. 알면서 입을 다무는 사람, 현재의 달콤함에 만족하며 불의를 알고 있음에도 평화를 위해, 개인의 평화를 위해 입을 닫는 사람. 깨어난 의식을 바탕으로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


나는 이 대항하는 사람들의 힘이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가진 것 없는 절규가 아니라,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으면서까지 불의에 울부짖을 수 있을까? 뭐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진심으로 민중을 위한 행위일 수도 있고, 민중들도 어쩌면 변화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혁명을 외치는 사람들이 반드시 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 선을 위해 살지만, 나의 선이 타인의 선인 것은 아니다.


사회는 너무나도 커져버렸고, 개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민초 하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집단은 없다. 아니 국가는 없다. 개인의 목소리도 어딘가 조금 더 큰 집단에, 조직을 거쳐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나가야 사회가 관심을 준다.


다들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너무도 어린 생각일까. 왜 저렇게 싸우고 투쟁하고, 권력을 쟁취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일까. 다들 그저 책을 읽고 좋은 것을 보고, 말 그대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다가오는 밝은 미래를 위해서 살자고 하면 그건 정말 유토피아를 꿈꾸는 말이겠지.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의심을 품었다가 입을 다무는 동물 농장의 동물들처럼.


새로운 것을 보고 듣지 않는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화만 진행될 뿐 변하지 않는다. 그 노화 조차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생각하지 않은 인간은 어딘가에 닻이 걸린 것처럼 변하지 못한다. 그 주변만 맴돌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고, 내가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파도가 일어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일 뿐인데.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힘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청소년 필독서가 아니라 전 세대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행동하지 못할지언정, 내가 무엇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이름은 (20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