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7세 고시'를 보고 쓰는 글.
원래도 사교육에 관심이 참 많았고 반대하는 입장인데 와 이건 진짜 미쳤다 싶었다. 아니, 나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 스카이, 고려대학교 나와서 중견기업 다니고 그냥 결혼하고 평범하게 사는데? (그 와중에 남편한테는 돈 잘 못번다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심지어 수능도 그냥 잘 본게 아니라 전체에서 2개를 틀렸다. 수능 끝나고 난 뒤에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냐고? 아니다, 그냥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아, 내 인생이 망하지 않겠구나 이 생각. 공부하는 과정,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진심으로 행복했고 도파민이 나오는 순간들이었지만 경쟁은 최악이었다.
수능이 끝난 뒤부터 경쟁이란 글자는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학부제였던 고려대학교에서 유일하게 학과제였던 사범대학에 갔다. 학부제를 가면 대학교에 가서도 경쟁해야 하니까. 경영학과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 합격을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공도 그냥 사범대 중에 제일 높은 과를 썼다. 그만큼 경쟁에 치가 떨렸고 싫고 무섭고 피하고 싶었으니까. 근데 수능은 피할 수 없으니까 그냥 열심히 했던거고
그래서 대학교에 가고 나서도 그냥 살았다. 뭔가 이루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살았다. 그러다가 미국에 잠깐 나가게 되었고 그 때 그 자유가 너무나도 달콤해서 해외에서 사는 삶을 꿈꿨다. 그냥 한국이 싫었고 호주에서 샌드위치만 팔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나랑 똑같은 대학 나와서 더 잘되는 사람이 더 많다.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기 때문에 더 큰 경쟁도 더 잘 이긴다. 더 잘 버티고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그렇다. 확률상 훨씬 높은 확률로 한국에서 말하는 '잘 사는 인생'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확률을 위해서 애들을 그렇게 희생 시키는게 맞나?
나는 학창시절에 내가 일기에 적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독해지자, 웃지말자 흔들리지 말자 놀지 말자' 이런 일기를 고2가 적었었다. 17살이. 이팔청춘에 낙엽만 떨어져도 웃는다는 여고생이 저런 말을 쓰고 두통이 심해서 머리를 손으로 때려가면서 공부를 했다. 그래서 나에게 남은게 대체 뭐지?
대학에 가서 과외가 잘 잡혔던 것, 좋은 대학에 다닌 다는 자부심 그 이상 뭐가 있었을까? 좋은 대학이 아니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내 삶을 책임지고 내 밥벌이를 하는 것, 이 정도는 10대를 저렇게 보내지 않아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고 내가 다니는 중견기업에서도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중견기업에 스카이를 나온 사람은 전체 인구에서 스카이를 나온 비율과 비슷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0대, 아니 저 다큐보니까 10대도 아니고 뭐 0자리수대..? 뭐라 해야 하나 3살 학원도 있던데, 아무튼 저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거다. 그리고 사교육 저렇게 돌린다고 뭐 안 될 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교육을 거의 안 받은 편이지만 (분당 애들 치고) 그래도 공부를 잘했다. 그냥 어릴 때부터 혼자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딱히 다른 거 잘하는 것도 없어서 그냥 놔둬도 공부했을 애다.
근데 애들을 저렇게 학대해서 키우다니.. 똑같이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애가 저런 환경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 별로다. 요즘 남편이랑 학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부동산은 학군지에 하되 나는 치열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스카이 나온다고 인생이 성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확률은 높을 수 있지만 그걸 위해서 내 애의 정서를 해칠 이유는 없다. 저런 선택을 하는 부모는 아이의 정서와 미래까지 자기 책임인 걸 알고는 있을가. 그리고 본인은 스카이를 나왔나 그게 더 궁금하다.
본인이 스카이 나오고 의사면 뭐 그 인생이 좋았으니 그렇게 살으라고 하는거니까 오히려 더 당위성 있는 선택이라고 본다. 자기가 살아온 삶이 좋은데 아이한테는 다르게 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나는 고대 나왔고, 22년도 수능에서 2개를 틀렸고 고려대도 2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공부가 너무 싫어서 첫학기에 평균 3.5를 못넘었더니 장학금이 짤렸다. 다행히 다음 학기부터는 다시 받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대학교 졸업해서 중견 항공사를 5년 정도 다니다가 지금은 또 대기업 계열사의 중견 회사에 4년 째 다니고 있다. 인생이 그냥 이렇게 흘러 간다.
아쉽냐고? 뭐 아쉬워 내 선택이고 이게 내 인생인데. 10때 치열하게 경쟁에서 이겼고 그 후에는 경쟁이 싫어서 그냥 살겠다는데 뭐, 이 정도로 살 수 있는게 고대 나온 덕이라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나는 애들 학대 좀 안했으면 좋겠다. 내 10대가 너무 별로 였어서 그런가 저런 영상만 보면 진짜 너무 화가 난다. 내 애기는 진짜 그냥 해외로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엄마 나는 한국이 싫어요, 하면서 그냥 자기 살길 찾아서 독립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근데 이것도 내 욕심이지, 그냥 자기 생긴대로 살게 되는 것을. 알아서 잘 자라겠지 사랑 많이 주고 스스로 독립 할 수 있도록 키우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부모 정도나 되어 줘야지.
사교육이 필수가 아니라 그냥 선택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내 애기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람이 5천만명이면 5천만개의 정답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