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장을 가진 나에게
전 회사의 팀장님에게 퇴사한다고 말했을 때 '같이 먹은 밥이 얼마인데..'라고 했다. '밥 정' 만큼 강한게 없다고. 다른 팀들에 비해 유난히 우리 팀이 밥을 다 같이 자주 먹긴 했다. 특히 회사 밖으로 나가서 '외식'도 많이 했다. 사회생활에서 '식사'는 빠질 수 없는 일상 중에 하나이기에 함께 보낸 시간이 참 길다. 특히 늘 먹는 점심 식사뿐만 아니라 저녁 회식 자리도 포함되니 함께한 식사자리와 그때 나눈 대화는 셀 수가 없다.
문득 대학교 시절, 항상 나와 점심을 먹던 학교 선배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넌 이렇게 가리는 음식이 많아서 사회생활 어떻게 할래?"
친구들이야 이해해주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 내 식습관 때문에 힘들 거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가리는 음식이 많다.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는 음식도 많을뿐더러 소화하기 힘든 음식들이 몇 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 웬만하면 식사 약속보다는 커피나 술 약속을 잡는다. 각자 끼니를 해결하고 만나는 거다. 사람들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나 때문에 메뉴 선택에 피곤해질 내 지인들에 대한 배려다. 그런데 매일 식사를 함께해야 하는 직장 생활에서는 이게 참 쉽지 않다.
갑각류 알레르기
나의 과거 팀장님은 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했다. 나 또한 회를 좋아했기에 회식 자리는 절대 어려운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연말 회식으로 대게집을 잡은 날,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팀원들에게 맛있는 (+비싼) 음식을 사주시겠다며, 직접 예약까지 하셨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저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데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정성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내 알레르기에 대해 알고 있던 대리님이 몇몇의 팀원 분들에게 귀띔 해주었다. 알레르기 약을 먹고 팀원들이 몰래몰래 챙겨준 다른 몇 가지 반찬으로 회식자리를 무사히 이겨낼 수 있었다. 나중에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팀장님에게 사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왜 말하지 않았냐고 그래도 고맙다고 말하셨다. 그 후로 우리 팀은 갑각류는 물론 어패류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반찬으로 해산물만 나와도 나를 신경 써줬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알레르기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밀가루(글루틴) 불내증
글루텐 불내증이라고 하나, 밀가루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증상이 있다. 어쩜 그렇게 밀가루 음식만 먹으면 장이 요동을 치는지 모르겠다. 빵, 면을 먹으면 신체적으로(=장이) 너무 힘이 들어서 밀가루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사람들은 밀가루 끊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난 가끔 파스타나 피자를 마음껏 먹고 싶다. 사실 가리는 음식이 많으면 예민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 쉽다. 하지만 정작 제일 힘든 사람은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먹으면 탈이 나는 사람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회사에서 업무차 컵라면을 사야 하는 날이 있었다. 나와 함께 마트에 갔던 직장 상사는 자연스럽게 컵 쌀국수를 하나 집어 들었다. 나를 위한 거였다. 그 날의 감동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컵라면을 먹기 싫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그분은 말했다.
"당연히 신경 써줘야지. 까망콩씨가 먹기 싫어서 안 먹는 것도 아닌데"
한참 어린 사원의 (장) 건강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는 건 퇴사한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다고, 가리는 음식이 많다고 해서 사회생활이 힘든 건 아니었다. 되려 나를 신경 써주고 챙겨주는 팀원들에게 감동받는 일이 더 많았다. 그리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신체 반응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걸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멀리하는 게 맞을 거다. 사회생활이라고 내가 이겨내지 못하는 것들을 억지로 참아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의 불편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배려받기를 원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나도 팀 식사에 적절히 융화되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식사 자리에 가면 내가 못 먹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맛있게 먹었다. 못 먹는 음식을 못 먹는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사회생활은 거뜬하다. 내 몸의 알레르기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