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혼자 하는 게 제 맛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에게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지내는 공간과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내가 정의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있다. 함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대화를 나누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나를 알아가기는 어렵다.
대학교 때 배낭 하나 매고 시작한 미국 여행을 시작으로 혼자 여행을 꽤 많이 떠났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고 해서 여행 기간 내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친구들과 여행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며칠간 먼저 가있었던 적도 있고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정 기간 함께 여행을 한 적도 있다. 여행지에서 나 홀로 보낸 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이 혼자 떠난 여행이다.
나의 여행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상에서의 탈피다.
일상이 싫은 건 아닌데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때가 있다. 100% 똑같은 하루는 없다지만 가끔은 매일매일이 같은 날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바로 항공권을 예매한다. 권태로움이 느껴지면 바로 떠나는 거다.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땅에서 발을 떼고 일상에서 벗어난다.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일상과 분리되는 기분이 든다.
몇 년 전에 한국을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어디든 좋았다. 그저 한국만 아니면 되었다. 그때 1박 2일로 홍콩을 다녀왔는데 머리가 깔끔해졌다. 홍콩의 어느 공원에서 그때 당시의 고민을 글로 쏟아내고, 처음 가보는 나라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같은 아시아 사람이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외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언어로 대화하는 광경, 그리고 다양한 음식들까지. 한국에 남겨 놓고 온 일상과 분리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국적인 곳이었다.
현실과의 거리감을 주기 위하여,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여행의 이유다.
두 번째는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이라는 책에서 (이영민 저, 2019) 저자는 '여행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해 준다.'라고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일상에서 보지 못한 나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더 깊은 내면을 만나기 위해서 글을 쓰는 행위가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여행 하는 내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 비행 중에 그리고 여행지의 순간순간, 잠시 멈추어서 글을 쓴다. 그런데 그 글은 풍경에 대한 감상이라던가, 건축물에 대한 평이 아니라 여행지에 있는 '나의 생각'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여행지의 낯선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떠오르는 글을 쓴다. 지금껏 받지 못한 새로운 자극을 통해 머리가 말랑말랑 해지는 느낌이랄까. 누군가에겐 내가 여행을 떠난 그곳이 일상의 배경이겠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다.
나의 브런치 글 중에 '사범대생이 교사가 되지 않은 이유'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여행지의 어떤 카페에서 써 내려간 글이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막연하게 누군가가 교사가 되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하던 몇 가지 이유는 있었지만 그렇게 구체적으로 글로 적진 않았었다.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이 가는 카페에 노트북 하나 들고 가서 글을 썼다. 거의 세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글을 썼다. 막힘 없이 죽죽 써 내려갔다. 여행지에서 내가 과거에 내렸던 선택을 마주하고 그걸 글로 적게 된 거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그 글은 브런치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와 공유수를 갖게 되었다.
세 번째는 역시 사람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감정과 함께 기억한다. 일상에서 만난 낯선 이들은 잊히기 쉬운데 이상하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대화에 대하여(시어도어 젤딘, 2019)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세상을 더 넓혀 나가야 한다고. 여행지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세상이 더 넓어지는데, 그곳에서 만난 낯선 이라니. 삶이 두배로 넓어지는 느낌이다.
20대 초반에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사랑에 대해) 깊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마이애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당시의 나는 내 사랑이 너무나도 힘들고 영화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 만난 칠레 여자와 프랑스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랑에 대한 나의 세상이 넓어졌다. 칠레 여자는 미국 서부에 살았는데 마이애미에 여름휴가를 왔다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을 잊지 못해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직업과 자신의 삶의 터전을 다 버리고 사랑 하나만 보고 마이애미에 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두고 나라 한 쪽에 남겨두고 다른 끝으로 이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났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를 보고 나의 사랑 또한 지나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칠레 여자의 친구는 프랑스 사람이었는데, 그 프랑스 친구도 사랑 때문에 멕시코로 터를 옮겼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그 멕시코인과는 이별하고 마이애미로 여행을 온 거라고. 그들은 강렬한 사랑에 빠졌었고 그 사랑에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즐기고 있었다. 지나간 인연에 슬퍼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건 과거일 뿐, 새로운 사랑이 오리라는 사실을 믿었고 또 기대했다. 그들 내면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가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의 굴곡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사람을 믿고 삶을 즐기는 그들을 보며 나도 사랑과 사람에 대해 의연해질 수 있었다.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감정의 바다에 빠졌더라도 모든 사랑은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은 후회가 없다는 것과 나의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 여행을 떠나서, 그것도 혼자 떠나서 호스텔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기에 들을 수 있던 이야기다.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사람은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롭고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적당히 사람을 만나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사람에게 혼자 하는 여행은 참 좋다. 사회성 에너지가 고갈되면 혼자가 되어 나를 마주하고 사람이 그리우면 일대일 투어나 호스텔에 머물면서 사회화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따금씩 혼자 여행을 간다. 그리고 그런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다. 좋은 곳에 가서 좋은 나, 좋은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가득 채워오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여행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