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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pr 21. 2019

사범대생이 교사가 되지 않은 이유

영어교육전공인데..?

왜 선생님 안 해요?

이 질문 진짜 많이 받아봤다. 거짓말 안 하고 백번은 들어본 것 같다. 취업 준비할 때도 그랬고 입사하고 나서도 정말 많이 들었다. 그 좋은 직업을 두고 왜 회사를 다니냐고. 그럴 때마다 그냥 교사는 저랑 안 맞아서요.라고 말했었는데 사실 교사가 되지 않은 이유, 몇 가지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다. 스물세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도 채 되지 않은 봄에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생 선생님이 되었다. 그 후에 내린 결론이다. 


나의 모교이자 교생실습 나갔던 학교


첫 째, 교사와 학생은 ‘랜덤'으로 만났다.


서로를 선택하지 않은 관계


사범대생이라 그런지 대학 시절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과외부터 시작해서 청소년 영어토론 캠프, 구청에서 진행한 멘토링 등 모두 서로가 서로를 원해서 만나게 된 관계였다. 나 또한 학생들이 좋았고 학생들도 나를 선택해서 그 자리에 왔으니 당연히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학생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공교육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교실에 있는 사람들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자면 학생 그리고 교사다. 이 두 집단은 어쩌다 보니 같은 공간에 있게 된 것이지 서로 선택한 관계가 아니다.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이 관계가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도 나와 마음 맞는 사람 찾기가 어려운데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고 달라질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고백하자면 교생 실습 기간 동안 주는 것 없이 좋은 학생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 타인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교단에 서는 순간 그 감정은 나의 탓이 되었다. 학생들을 애정 차이 없이 동등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 감정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두 번째, 나는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가?


내 세계는 학생들을 가르칠 만큼 넓지 않았다.


교생 실습 이후 미국에 두 달간 다녀왔다.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세상과 직접 보고 느끼며 경험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세상을 깨어 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깨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교사가 되기 전에 보아야 할 세상이 더 많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도. 


학부 공부만 해 놓고 교사의 역할을 논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학생들의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주는 존재 중 하나가 학창 시절의 선생님 아니던가. 교과목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세상을 넓혀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학생들에게 넓은 세상을 가르쳐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을 깨 주어야 하는데 나도 아직 알인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이대로 교사가 되면 학생들과 함께 성장할 것만 같았다. 준비되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세 번째, 교사는 학생에게 영향을 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의 두려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보충수업을 듣지 않고 교내 독서실에서 자습을 하다 걸렸었는데 그 당시에 들었던 말은 엄청난 상처였다. (물론 내가 잘못했다..) 아직도 그때의 복도 분위기, 선생님의 표정, 말투 모든 것이 생각난다. 거의 10년도 다 된 일인데도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도 한 명의 사람이라 감정적으로 말할 수도 있는데 학생 때는 그런 걸 알기가 쉽지 않다. 선생님의 행동이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때 그분도 내가 그 말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거다. 


내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만약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글쎄, 그런 가능성이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회사를 다닌다고 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어린 학생들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미완의 존재였던 나는 교사가 되기에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교생 마지막 날 나의 지도 선생님이 해준 말이 있다. 지금 가진 이 순수한 마음으로 교사가 되라고, 좋은 교사가 될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엄청 울었는데 (지금도 이 글을 쓰는데 눈물이 핑 돈다.) 그 선생님의 말처럼 좋은 교사가 될 자신이 없어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교 4년 내내 공부했던 전공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 된다면 그때 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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