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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Oct 06. 2019

기계에도 정이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계가 있다. 

어느덧 정이 왕창 들어버린 추억의 2014년형 맥북에어.


처음 이 친구를 만난 건 2014년 여름, 대학교 3학년 때다. 어느덧 6년 차, 만 5년이 넘었다. 이곳저곳 이 친구와 함께 하지 않은 곳이 없다. 대학생 시절 경기 남쪽에서 서울 북쪽까지 늘 이 친구를 들고 다녔다. 1kg 조금 넘는 무게라며 광고하던 바로 그 맥북'에어'지만 어찌나 무거웠는지. 그래도 늘 나와 함께였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도 그리고 힘들었던 시기도 이 기계 하나로 버티고 버텨냈다. 


매일매일 함께했고 지금도 늘 곁에 두고 있으니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 폰의 기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일이 줄었다고 한다. 퇴근 후에 컴퓨터 화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거다. 그런데 나는 노트북을 자주 쓴다. 아침마다 맥북으로 일기를 쓰고 집에 돌아와서도 글을 쓰거나 영상을 본다. 늘 내 책상에, 그리고 늘 내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아마 이 맥북이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 것이다. 내 모든 마음이 메모장에 담겨있고 지금까지의 삶이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다.



오른쪽 끝이 찌그러져있다.



사람들이 내 맥북을 보면 왜 이렇게 막 썼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울퉁불퉁 모난 데가 많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애지 중지 솜털 가득한 파우치에 넣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대학교 시절 처음으로 떨어트린 기억이 난다. 교내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미끄러져서 대리석 바닥에 콩 떨어졌다. 찌그러진 한쪽 끝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지금은 여기저기 파이고 구겨졌지만 그때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벌벌 떨었다. 생채기 하나 날까 조심조심 다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화면 먼지 한번 닦아주지 않을 정도로 그냥 둔다. 


외부는 그렇다 치고 맥북 내부도 한번 고장 낼뻔한 적이 있다. 윈도우를 깔아보겠다고 부트캠프를 설치한 거다. 그 때만해도 맥에서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수 없어서 불편함이 많았다. 121GB밖에 안 되는 이 친구에게 60GB를 잡아먹는 부트캠프는 용량 초과였다. 방법도 잘 알아보지 않고 혼자 시도했다가 사진이며 문서며 홀라당 다 날려먹었다. 대학교 때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는데 한 번에 다 삭제되었다. 소프트웨어가 다 죽어버리는 맥북 벽돌이 될뻔했지만 겨우 맥 OS를 살려냈다. 그렇게 이 친구와의 인연이 3년 연장됐다. 


이제는 안다. 놓아줄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요즘은 맥북을 들고 움직이면 '또르르'소리가 난다. 안에서 나사 하나가 풀린 것 같다. 이 친구와의 인연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고 싶지 않다. 처음 이 기계를 손에 잡던 때만해도 나는 어리디 어린 스물셋 대학생이었는데 어느새 서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친구와 안녕을 고하면 나의 20대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래오래 붙잡아 두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이십대와 이 맥북을. 아이쿠야 기계에 이렇게 정이 들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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