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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인도, 공기만은 회색인 그 곳

색채의 나라 위에 내려앉은 회색 공기

by Pavittra

스마트폰만 켜도 인도는 늘 화려합니다. 핑크색 성벽이 이어지는 자이푸르, 새벽 강물을 붉게 물들이는 바라나시, 델리 뒷골목의 난장 같은 시장 풍경까지. 여행 유튜브에선 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리스트에 인도가 빠지지 않죠.


그런데 요즘, 그 유튜버들조차 인도 여행을 포기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유는 하나, 공기.


스위스 대기질 기업 IQAir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공해가 심한 도시’ 상위 10곳 중 7곳이 인도 도시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여행 콘텐츠로 먹고 사는 사람들조차 “촬영이 불가능하다”며 일정을 접는 나라. 오늘은 인도를 뒤덮은 초미세먼지의 실체와, 그 속에서 바뀌어 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스모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진 한 장만 봐도 숨이 막힙니다. 인도 문(India Gate)을 향해 뻗은 길 위로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람들 실루엣이 아지랑이처럼 떠다니죠. 그런데 그게 안개가 아니라, 먼지입니다.


지난해 12월 IQAir가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비르니핫(128.2), 델리(108.3), 파리다바드(101.2) 같은 인도 도시들은 PM2.5(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감이 잘 안 오는데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연평균 기준이 5㎍/㎥입니다. 인도 주요 도시들은 이 기준의 20배를 가볍게 넘겨 버린 셈이죠.


이 농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서울 미세먼지 ‘매우 나쁨’ 단계가 대략 76㎍/㎥ 수준입니다. 델리 같은 도시는 “서울 최악의 미세먼지 날”이 1년 내내 이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실제 델리 수도권에선 2022~2024년 사이 급성호흡기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20만 건을 넘겼습니다. 입원 환자만 3만 명 이상. 숫자 하나하나 뒤에, 밤새 기침하는 아이와 옆에서 같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부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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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도 하늘은 이렇게까지 망가졌나


인도의 공기 오염은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악재가 동시에,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결과에 가깝죠.


첫째, 석탄입니다. 인도 전력의 70% 이상이 여전히 석탄발전에 의존합니다. 산업화 속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죠. 전력 사정이 나빠지면 공장이 서고, 공장이 서면 곧장 실업과 폭동으로 이어지는 나라에서, 깨끗한 에너지보다 “당장 불이 켜지는 에너지”가 더 절실했습니다. 그 대가를 지금 도시 하늘이 치르고 있는 셈이고요.


둘째, 농촌의 관행. 델리 주변 펀자브·하리아나 지역 농민들은 추수 뒤 논을 태우는 방식으로 그루터기를 정리합니다. 이른바 ‘화전(燒田)’. 겨울만 되면 이 연기가 수도권으로 몰려와, 이미 나쁜 공기에 또 한 겹의 스모그를 입히죠. 매년 “올해는 불법 소각을 강력 단속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어지지만, 농부에겐 값비싼 기계보다 성냥 한 갑이 훨씬 싸게 먹힙니다.


셋째, 폭발적인 도시화와 건설 붐. 콘크리트 먼지, 모래 먼지, 건설 폐기물.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공사 현장은 마치 거대한 분진 발생기 같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디젤 트럭은 이 먼지를 그대로 빨아들였다가, 다시 하늘로 내뿜죠.


여기에 노후 디젤차, 규제가 느슨한 공장, 쓰레기 소각장까지 더하면 답이 나옵니다. “인도는 공기가 나쁜 나라”라는 말은 구조의 문제지, 어느 한두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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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도, 여행자도 떠나는 도시


그럼 이 공기는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요.


먼저, 마스크가 기본값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 시절에 보던 광경이, 델리에선 계절성 풍경입니다. 스모그가 심해지는 11~2월이면 학교가 휴교를 하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야외 공사가 중단됩니다. 초미세먼지 ‘비상조치’가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연례행사’에 가깝습니다.


둘째, 도시에 계급별 산소 버블이 생겨납니다. 돈이 있는 집은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여러 대 돌리고, 차 안에도 공기청정기를 달죠. 국제학교, 대형 쇼핑몰, IT 기업 사무실은 최신 공조 시스템을 앞다퉈 자랑합니다. 반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은 그저 “올해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릴 뿐입니다.


여행 업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동안 인도는 여행 유튜버들의 단골 배경이었습니다. “하루 10달러로 일주일 버티기”, “인도 기차 타고 30시간 횡단하기” 같은 콘텐츠가 쏟아졌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들이 올리는 인도 영상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스스로 밝힌 이유는 단순합니다.


“영상이 안 예뻐요. 그리고, 촬영 끝나고 나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낭만입니다. 석양을 바라보며 노을 사진을 찍고 싶은데, 카메라에는 회색 필터만 덮여 나오니까요.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여행지를 다른 나라로 돌립니다. 여행사들은 일정표에서 델리를 빼고, 상대적으로 공기가 나은 남부 도시들로 코스를 재구성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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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멈출 수 없는 나라의 딜레마


인도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차량 2부제, 건설 공사 중단, 노후 공장 폐쇄, 농촌 소각 단속 같은 정책이 매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뉴델리 시민들은 겨울마다 “이번에도 학교가 며칠이나 쉴까”를 예상할 정도죠.


하지만 구조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인도는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나라입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날로 정치가 흔들립니다. 당장 전기를 끊으면 공장은 멈추고, 해외 발주가 날아갑니다. 석탄발전을 줄이고, 내연기관차를 억제하자는 말이 맞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그러면 오늘을 어떻게 버티냐”라는 질문이 바로 따라오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은 분명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전국적인 송배전망을 깔고, 값싼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는 건 1~2년 단위로 끝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니까요.


결국 인도는 이런 딜레마에 갇혀 있습니다.

“성장을 늦추면 가난이 문제고, 성장을 밀어붙이면 공기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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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도를 보며 배워야 할 것들


한국 독자 입장에서 인도 얘기는 쉽게 “저 먼 나라의 극단적인 사례”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이건 일종의 선행 실험 같기도 합니다. 인도는 “성장, 도시화, 석탄 의존, 자동차 증가”라는 공식을 우리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밀도 높게 밟아가고 있는 나라니까요.


우리가 이미 한 번 겪어봤거나, 곧 겪게 될 문제들이 인도에선 몇 배 속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 도시의 주거와 교통 정책이 공기 질을 어떻게 바꾸는지

- 에너지 전환 속도가 뒤처질 때, 누가 먼저 숨이 막히기 시작하는지

- ‘나쁜 공기’가 관광·콘텐츠 산업까지 어떻게 잠식하는지


유튜버들이 여행을 포기하는 나라는, 사실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오늘은 가급적 밖에 나가지 않는 게 낫겠다”고 마음을 접은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거겠죠.


우리는 인도의 하늘을 보면서 그저 “와, 저기는 진짜 심하네”에서 멈출 건지, 아니면 “저렇게까지 가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바꿔야 하지?”까지 가볼 건지.


인도의 스모그는 한 나라의 재난을 넘어, 다른 나라들에게 건네는 일종의 경고장에 가깝습니다. 그 경고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슬쩍 눈을 돌릴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By. 프라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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