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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도 앱도 없이 세계 최고. 인도의 다바왈라

by Pavittra

130년 된 전통, 오히려 GPS도 앱도 없이 세계 최고… 인도의 다바왈라를 아시나요?


2013년 개봉한 인도 힌디어 영화 <런치박스(The Lunchbox)>를 아시나요? 당시 저는 인도에서 막 귀국을 한 상태였는데, 이 영화가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실 인도 볼리우드 영화가 한국에서 정식으로 상영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지요.

주부 일라(Ila, 님랏 까우르)는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 정성껏 도시락을 싸서 다바왈라를 통해 보냈습니다. 인도에서는 도시락을 보내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채식주의자가 많고, 외식에 대한 위생 불신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집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이 다바왈라의 손을 거쳐 직장까지 배달되는 풍경은 뭄바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도시락은 뜻밖에도 은퇴를 앞둔 외로운 회사원 사잔 페르난데스(Sajaan Fernandes, 고(故) 이르판 칸 분)에게 배달됩니다. 이후 편지를 서로 주고 받으며 도시락이 아닌 사랑을 전하는 다바왈라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단순히 도시락을 매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영화의 배경에는 인도 뭄바이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배달 시스템인 다바왈라(Dabbawala)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lunch box.jfif 도시락 배달을 매개로 한 러브 스토리 "런치박스"


다바왈라란 힌디어로 ‘다바(Dabba, 도시락통)’와 ‘왈라(Wala, ~하는 사람)’가 합쳐진 말로, 곧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다바왈라는 130년 넘게 이어져 온 인도의 전통적 배달 시스템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창성을 자랑합니다. 현재 약 5천명의 다바왈라가 매일 20만개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계산해도 1인당 하루 35~40개의 도시락을 책임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GPS도, 앱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시락통에 표시된 단순한 색깔·숫자·기호가 유일한 분류 체계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 오히려 놀라운 정확성을 만들어 냅니다. 실제 배송 오류율은 600만 건 중 1건에 불과하며, 하버드대와 세계은행이 ‘기적의 물류’라 평가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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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경영대학원은 2010년 케이스 스터디 The Dabbawala System: On-Time Delivery, Every Time」에서 다바왈라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최신 IT 기술 없이도 초정밀·초저비용 운영이 가능한 이유를 경영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혁신은 꼭 첨단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시스템과 공동체의 규율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포브스 글로벌은 1998년 보고서에서 다바왈라를 식스 시그마(Six Sigma) 수준의 품질을 달성한 집단으로 평가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밀함을, 문맹률 높은 공동체가 단순한 암호 체계와 규율만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다바왈라는 ‘첨단 기술이 없어도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다바왈라는 건재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고, 최근에는 인도의 스위기(Swiggy)나 조마토(Zomato) 같은 음식 배달 앱의 확산으로 규모가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전성기에는 하루 20만 건 이상이었지만 현재는 약 15만 건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뭄바이의 전통적인 직장인 문화 속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바왈라가 뭄바이에만 집중된 이유가 있습니다. 뭄바이는 도시 전체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교외 철도망(Local Train Network)이 발달해 있어, 도시락을 대량으로 싣고 이동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이었습니다. 또한 거대한 금융·상업 중심지로 직장인 수요가 폭발적으로 많았던 것도 배경이 되었습니다. 반면 델리, 첸나이 등 다른 대도시에는 이런 철도망이 촘촘히 갖춰져 있지 않아 같은 시스템이 자리 잡기 어려웠습니다.

경제적 의미도 큽니다. 다바왈라는 저학력 농촌 출신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하고, 도시 직장인들에게는 값비싼 외식 대신 집밥을 제공해 생활비 절감에 기여합니다. 동시에 글로벌 프랜차이즈 음식 문화의 일방적 확산을 막아내며, 뭄바이 중산층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배달 서비스는 첨단 IT 플랫폼과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고 있지요. 그러나 뭄바이의 다바왈라는 130년 넘게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증명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혁신은 기술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공동체와 신뢰 그리고 규칙과 규율율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질문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첨단 기술과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배달 플랫폼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서, 다바왈라는 단순한 시스템과 공동체 신뢰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과도한 기술 의존과 높은 수수료 구조에 대한 반성, 그리고 단순함이 곧 혁신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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