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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어과에 간다고?!

우연같지만 필연이었나.

by Pavittra

2000년 12월, 첫 밀레니엄 시대라 하더라도 세상은 전과 변함없이 흘러갔다. 나에게도 인생의 첫 관문인 수능 시험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지방 면 단위 소재지에서 나름 공부 좀 한다고 도시로 건너와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유학한 나에게 어쩌면 이름있는 대학과 출세가 보장된 과에 가는 것은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당연한 바램이었던 것 같다.


나름 노력했다고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만점자가 60명 넘게 나오는 전례없는 쉬운 물 수능(?)이었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시험을마치고 학교에 돌아가니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전체 3문제 틀렸네, 5문제 틀렸네 하며 아쉬움의 후기를 남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거기에 낄수 없었고 좌절감은 더해갔다.


부모님은 워낙 막내아들은 믿어주시는 탓에 내가 되려낙심할까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고, 결국 미래는 나의 선택에 맡겨졌다. 내 점수를 받아보고는 내가 갈수 있는 학교와 과를 탐색했다. 애당초 3대 명문대의 비인기학과도 갈 수 없는 점수에 집에서는 살며시 재수하는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치만 번아웃이 왔는지, 내년에 또 올해만큼 할 자신도 없었고 다시 입시의 괴로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빨리 학교를 선택하여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어릴때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인지, 나중에 크면 외국에서 외국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막연한 꿈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신문에 외국사람과 악수하는 모습이 나오면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이런 일을 배울수 있는 학교를 찾아보니,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영어과, 중국어 같은 소위 인기학과는 역시 점수가 되지 못했고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베트남어과, 말레이지어과, 인도어과, 아랍어과 등등 우리끼리 말로 제3세계(?)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과에만 갈 수 있었다. 어느날 하숙집에서 친구와 같이 밥 먹으며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베트남어과 유망할거 같니? 인도어과가 나중에 뜰거같니?“ 이런 무식한 질문에 친구는 ”인도가 사람도 많고 하니 인도가 나중에 더 발전하지 않을까?“ 라고 나의 인생을 바꿔 놓은 한마디를 해주었다. 그 길로 나는 가족과 상의도 없이 인도어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부모님과 상의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 합격 소식은 들은 부모님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그저 막내아들이 잘 하겠지라고 응원해주셨다.


사실 대학교에 갈때는 인도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비젼도 없었다. 오히려 인도어과에 간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일류 대학교, 좋은 과에 가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인도어과에 간 이유는 단순히 내가 갈 수 있는 점수였던 것이었고, 그래서 당연히 입학해서도 공부에는 담을 쌓았다. 그러면서도 인도가 나중에는 잘 되겠지 하는 무식한 바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1학년을 보내니 학사경고라는 결과가 통보됐다. 부랴부랴 부모님 모르게 해야하니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 우편주소를 바꾸었고 어느날 갑자기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바로 나는 다시 도망치듯 군대로 갔다. 나이가 또래 대비 어린터라 지원해서 갈 수 있는 곳이 몇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 오면 먼가 세상이 달라지겠지 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군대에서 지내는 동안 약간이나마 인도에 대한 세상의시각은 변해갔다. 그렇다고 세상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신화, 요가, 명상, 배낭여행 같은 기사만 나왔었는데 어느덧 브릭스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고,코끼리 인도 경제라는 제목으로 여기저기서 기사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쯤 군대를 제대하니 다시 무언가를 결정할 시기가 왔음을 느꼈다.


아직 23살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제대로된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는 없다라는 다소 무자비하고 이분법적인 생각만 하였다. 앞으로 다시 복학하려면 9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아버지 일을 돕기로 했지만 남는 시간에는 영어공부도 하고 인도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인도에 대해 책을 읽어야 했던 것은 복학해서도 인도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하는지 안해야하는지 결정 해야했었기 때문이다. 인도가 나와 맞지 않으면 빨리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으니깐. 대학교를 가서 이런 결정을 하다니,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고 우격다짐이었던 거 같다.


이렇게 복학 전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다가 정말 운명같이 책 한권을 만났다. 내가 제대할 쯤에 발간된 책인데, 요가, 명상, 여행 등에 관한 내용이 아닌 거의 최초로 인도 경제, 문화, 정치 등에 대한 책이었다. 책 저자는 인도의 미래를 매우 낙관하였고, 현지의 발전하는 도시를 모두 최근 사진으로 소개하였다. 읽다 보니 이게 내가 아는 인도가 맞나 싶었다. IT 수도 뱅갈로르, 하이데라바드를 소개하였고, 뭄바이, 첸나이 등 발전한 인도 도시들에 대해서도 조명하였다. 책을 보니 정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정말 이 책대로 미래가 그렇다면 한번 진지하게 도전하고 싶었다.


2004년 겨울, 아버지 일을 도우며 모은 돈 200만원과 배낭을 들고 60일 계획으로 그렇게 처음 인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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