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오래 걸려서 온 건지?
1달간의 푸네 로컬(?) 생활을 마치고 여행을 떠났다. 그 책에서 나온 모든 도시를 다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과 금전적 제한이 많아 그러지 못했다. 하이데라바드, 뱅갈로르, 뭄바이에 갔을 때는 정말 깜짝스럽고 세련된 건물들에 놀랐다. 정말 책에 나온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고, 그곳만큼은 부정적인 인도가 아니고 미래가 밝은 인도의 모습이었다.
사실 홀로 여행은 많이 외로웠지만 인도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고, 장거리 기차를 타며 얘기 나눈 인도인들이나 외국 여행자들은 그러한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는 잊혔지만 그때 그 감정과 창가의 뜨거운 바람은 여전히 오롯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델리를 마지막으로 첫 여행을 마무리했다. 내가 한 거라고 정말 거리를 보고 건물을 보고 인도 일반인들을 만나본 거뿐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인도 전문가가 된 거 같았다. 고작 아는 것은 여행가이드책에 나오는 것과 그 책에 있는 것을 읊어대는 것뿐이지만 인도에 온 것은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렇게 20대 어린 나이에 2달간의 인도 여행은 나의 인생에 중요한 첫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최소한 그간 고민이었던 대학교에서 인도어과를 계속해야 하는 고민은 사라졌다. 한번 열심히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열심히 하면 세상이 도와주는지, 세상의 인도에 대한 인식은 변해갔다. BRICS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중국과 인도를 뜻하는 CHINDIA라는 신조어도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2007년에는 인도가 세계 슈퍼파워가 될 거라는 전망이 즐비했다. 학교나 정부에서도 관련 지역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지원이 많았고 이러한 도움으로 델리대학교에 교환학생도 갈 수 있었고, 1년 더 인도에 있으면서 힌디어도 잘 배울 수 있었다.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타지마할에 출장자를 모시고 가는 아르바이트부터 한국에서 오신 불교신자님들을 모시고 다름 샬라에 달라이라마를 영접했던 일들은 아직도 퍽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이렇게 인도에서 1년 반을 지내고 오니 나의 인도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만 갔고 앞으로 인도에 대해서 일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어 버렸던 청춘이었다.
2009년 인도라는 나라에 인기를 증명하듯 많은 기업들이 인도를 공부한 사람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공고도 많이 떴다. 열심히 한 덕택에 4학년 1학기 채용이 확정된 대기업에 취업하기도 하였지만 더 인도에 관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될 듯 될 듯하던 취업이 결국 잘 되지 않았다. 비가 심하게 오면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면 옥탑방에서 많이 구겨져 살았던 시절이었다. 결국 나는 취직도 원하는 곳이나 인도에 대해 일할 수 있는 곳에 되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은 게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마치 인생 낙오자가 되는 거처럼 생각해 나의 관심은 무시하고 쫓기듯 취업을 하였다. 취업한 후에는 인도에 대한 꿈을 잊을 수가 없어 매일 독서실에서 취업원서 쓰는 게 일이었던 거 같다. 결국 인도에 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이직도 하였다. 이제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지났을까? 인도에 대한 열정이 그쯤하고 떨어지고, 어느덧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갖게 되었다. 행복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던 중 이렇게만 평생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인도 주재원 자리가 났는데, 지원을 부탁한다고’ 10년 동안 다시 잊혔던 인도였는데, 갑자기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원할 때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던
인도인데. 왜 이래 왜 이래? 이렇게 툴툴대고 있을 때, 가슴이 다시 뛰고 있음을 느꼈다. 가고 싶다. 가서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 8월,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던 시절. 나는 인도에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