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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vittra May 27. 2024

미국 모텔 사업까지 점령한 인도 이민자들

미국의 모텔 숙박 비즈니스의 60% 이상은 구자라트의 파텔 소유


미국에서 인도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더 이상 더럽고 못 사는 나라의 국민이 아니고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인도계들은 미국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 소위 NRI라고 불리는 재외 인도인들이나 이민 1세대의 후손들은 정치, 경제 곳곳에서 돋보인다.

 아주 과거에 실리콘밸리의 30%는 인도인들이다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 이후 상황은 더 놀라워지고 있다. 구글로 유명한 알파벳,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아도비, IBM 등 IT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크론 같은 반도체 회사를 넘어 스타벅스, 샤넬까지 모두 인도인이 최고경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식민지 국가였던 인도의 후손인 리쉬 수낙이 영국의 총리가 되었을 땐, 그야말로 인도는 축제의 장이었다. 영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부통령 까말라 해리스와 얼마 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던 전 유엔대사 니키 헤일리, 그리고 202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비벡 라마스와미 인도 출신이다.



 2010년대 들어 세계 전역에 인도계 이민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2020년 유엔은 세계 이민자 수를 2억 8100만 명으로 추산하였는데, 이 중 인도계 이민자 수는 1800만 명으로 비중이 가장 컸다. 멕시코 (1120만 명)와 중국 (1050만 명)이 뒤를 이었다. 인도계 이민자들이 주로 정착한 곳은 영어권 국가들이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에 거주하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임금이 비교적 높은 영미권 국가로 떠났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미숙련 노동자들이 이민을 떠났던 과거와 달리 전문직 이민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정보기술(IT), 의료업 종사자들이 인도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2022년도 미국의 전문직 전용 취업 비자인 'H-1B' 취득자 중 73%가 인도계 이민자였다.


 사실 미국의 불법 이민자의 숫자도 인도계가 월등히 많다. 멕시코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다. 불법 이민자들을 돕는 불법 이민 통로가 있었는데, 이를 'Donkey flight'라고 한다. 'Donkey flight'는 인도에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와 같은 나라로의 불법 입국을 위한 방법인데,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험난한 경로를 통해 목표국에 불법으로 도달하는 방법은 많은 위험과 착취의 문제를 동반한다. 이 문제는 샤룩 칸과 타프시 파누 주연의 넷프릭스 영화 'Dunki'에서도 다루어졌다.

 특히 구자라트, 펀잡, 하리야나 같은 지역에서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매우 위험한 Donkey Flight를 선택한 불법 이민자가 많다. 아마도 집안에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구자라트 지역의 특별한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도의 이민 역사를 살펴보면 재밌는 사실이 많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메리칸드림 처럼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구자라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갔는데, 그중 파텔 가문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구자라트 아메다바드에는 Patel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파텔은 구자라트를 근거지로 하는 농업을 하던 성씨인데, 이들의 끈끈함과 자부심은 매우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이 씨, 김 씨 등의 성이 많은 것처럼 이곳 구자라트에서는 파텔이라는 성이 매우 흔하다.

 어느 날 한 번은 인사팀 직원인 Vishal Patel 하고 커피 한잔 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본인이 있는 파텔 가문은 가족 중 한 명을 무조건 해외로 유학시키기 위해 모든 가족이 뒷바라지를 하고, 유학을 마친 자녀는 나머지 가족을 나중에 돌봐줘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중 한 명은 멀리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 나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미국에 있는 모텔은 모두 우리 구자라트의 파텔 가문이 가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겼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정말이었다. 어떻게 인도 사람들이 더군다나 특정한 가문이 미국 모텔 산업의 대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일까? 어쩌다가 모텔 사업까지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것인가?  과거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부회장이 구자라트 파텔 가문의 미국 모텔 사업 장악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사실도 유명하다.

 

 1942년 이후 미국의 모텔 환경은 구자라트계 미국인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방식이 이 커뮤니티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1920년, 먹고살기 힘들었던 구자라트주 한 젊은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농사를 지어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아프리카, 파나마, 자메이카 등 당시 인도인에게 비자가 필요 없는 영국 식민지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해외로 떠났다. 이후 멕시코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도착하였는데, 오로지 먹고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구자라트 출신 젊은이들은 1942년, 일본인이 주인이던 낡은 숙소인 호텔 포드에 살았는데 당시 세계대전을 이유로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이송하였다. 결국 일본인 여성은 그간 봐왔던 인도에서 온 젊은이에게 모텔을 매각했다. 인도인의 모텔 사업의 시작이었다.

 이후  젊은이는 사업이 추가될 때마다 구자라트에서 다른 가족들을 데려왔고,  그들은 자신의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때까지 모텔에서 먹고 자며 일할 수 있었다.


 결국 파텔 커뮤니티는 본토에 있는 가족, 사촌 등을 한 명씩 불러 모아 아메리컨 드림을 완성했다. 모텔에서 궂은일은 모두 가족이 맡아서 하기 때문에 전혀 인건비가 들지 않았다. 구자라트 인들은 채식주의자로 식재료도 많이 들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있는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꾸준히 사세를 늘려갔다.

 당시 파텔 커뮤니티를 성장하게 해 준 비밀 중 또 하나는 '無 계약서'로 악수 하나로만 이루어지는 커뮤니티 내 대출 문화였다. 그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악수 한 번 만으로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며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실제 이러한 대출에서 돈을 떼이거나 문제가 있었던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한다. 1950~1960년대 이렇게 서로의 도움을 통해 파텔 커뮤니티의 모텔 사업을 지속적으로 성장해 갔고, 사업이 성장하면서 또 다른 파텔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


 구자라트 출신 이민 1세대는 미국에서 모텔 사업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로 인해 현재 그 후손들은 매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이민 1세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 단위로 모텔을 운영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들은 검소하게 생활하며 벌어들인 돈을 모두 사업에 재투자하고,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일하는 방식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성장시켰다.

 그 결과, 많은 구자라트 출신 후손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유학을 보내어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커뮤니티 내에서 서로 돕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출 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성공한 구자라트 출신 모텔 사업가 수라즈 파텔이 얘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인도에서 우리는 모두 농부였습니다."

그 농부들이 지금은 미국에서 성공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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