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이직은 특별하지 않다?
인도 첫 해 회사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실적 부진이 주된 이유였지만, 똑같이 코로나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센터들은 모두 실적이 턴어라운드 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더 초조해져 갔다. 실적이 유독 좋지 않으면 본사나 대표법인으로부터 집중 관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위로는 법인장님의 조언을 받으며 점점 개선해 나갔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과의 공감대 형성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내 마음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함께 뜻을 모아도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져 나왔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직원들의 잦은 이직이었다. 어제까지 나와 같이 열정적으로 일하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니 또 한 명이 그만둔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한꺼번에 직원들이 그만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직원들을 마냥 보낼 수 없었다. 인사팀장에게 얘기하여 그만둔다는 직원들과 면담을 가졌다. 사유를 물어보니 ‘for better opportunity ’라고 포장해서 얘기하지만 대부분 급여 문제였다. 회사의 규정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급여를 올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직원이 나가면 누가 백업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과 걱정에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보낸 날도 많다.
타 지역에 있는 선배에게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오히려 답변은 남 얘기하는 것 같아 되레 서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1년이 그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인도의 이직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아무래도 인도 경제가 연 10% 내외로 급속 성장하면서 자리가 많아진 탓도 있겠다 싶었다.
인도의 이직률은 대략 20%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8~10%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젊은 나이로 가면 이직률은 더욱 심화된다. 특히 IT, Technology 쪽의 이직률은 평균 수치인 20%도 상회한다. 직원들을 뽑기 위해 면접을 볼 때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3~5개 이상 회사를 경험한 친구들이 허다하다. 우리나라 관점으로 보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은 전혀 꺼려하지 않는다.
이직 사유는 95%가 급여다. 우리나라는 회사 안에 직급별 연봉이 거의 정형화되어 있지만 인도의 많은 회사들은 전 회사 연봉 기준으로 직원에게 인상률을 제시하여 채용한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높은 직급에 있는 친구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낮은 직급의 직원보다 적은 급여를 받을 때도 있다. 인도의 많은 회사들이 확장하면서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고, 경쟁 회사들 간의 인력 다툼이 심하다 보니 이직 시에는 20%~30% 인상도 일반적이고 전혀 놀랍지 않다. 이러한 인상 수준을 젊은 나이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빨리 40대가 되기 전에 여기저기 이직을 통해 최대한 몸값을 키우는 것이 그들의 커리어 관리이다. 이 때문에 한 회사에 5년 이상 근무하는 주니어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속된 말로 일을 가르쳐 놓고 쓸만하면 나가는 형국이다.
회사나 산업군마다 다르겠지만 최근 인도에서의 급여 인상률은 연간 10~15% 이상이다. 아직까지 대리, 과장급이 우리나라 기준으로 100만 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노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정도 인상률이라면 조만간 경쟁력 있는 노농 시장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울 거 같다.
몸값 상승이 첫 번째 이유이긴 하지만 이와 다른 이유도 있다. 아끼는 직원 한 명이 갑작스레 사직을 통보했다. 회사 규정에 따라 Notice Perioid (사직서 제출 후 최소 근무 기간) 1달 후 회사를 떠나겠다는 얘기이다. 평소에 전혀 그런 낌새가 없고 급여도 적정했고, 회사 내에서도 향후 리더로서 커리어가 촉망되는 직원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다소 황당했다. 한편으로는 인도가 대국이라 것을 실감케 했다.
원래 이 직원은 인도 남부 첸나이 지역 출신인데, 이 지역은 힌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구자라트에 취직하여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본인은 외국어 하듯 힌디어를 오며 가며 배워서 의사소통하였지만 아내는 힌디어나 구자라티가 전혀 늘지 않아 매번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며 지내왔다고 한다. 시장에 가도 온통 구자라티나 힌디어로 얘기하니 참으로 어려운 삶이었다고 한다. 더 이상 아내는 참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것을 요구했고, 본인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귀향을 결심한 것이다.
어떻게 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언어 문제로 힘들어할까? 이게 한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게 실제 인도라는 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동안 책과 기사로 들었던 얘기인데 실제로 사람들이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정말 때로는 다른 지역이 아니고 다른 나라로 표현해야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는데, 부모와 가족을 돌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도인들이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가서 일을 한다고 하며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많다. 보통 40대가 넘으면 한 지역에 정착하고자 하는데 그때 대부분 고향 근처로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면접을 진행하게 되면 꼭 고향이 어디인지? 아내는 어느 지역 사람인지? 등을 꼼꼼하게 보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직원들의 잦은 이직을 경험하니, 더 이상 헤어지는 것이 마음에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좋은 직원을 더 빨리 뽑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 했다. 또 누구든지 빨리 일을 배울 수 있도록 한국식 매뉴얼도 만들기 시작했다. 평소에 고객사에 가면 스카우트할만한 사람도 눈여겨보기도 했고, 채용 소셜 네트워크인 링크드인에 가입하여 회사 홍보도 하기 시작했다. 링크드인의 사용자 수가 인도가 9백만 명 이상으로 전 세계 2위라는 것도 이때쯤 알게 되었다.
우수한 직원을 데리고 일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 최고다'라는 예전 어느 기업 광고에서 나왔던 말이 그냥 했던 얘기가 아닌 거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우수한 기업은 우수한 인력을 흡수하고 그런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깨달음의 순간이 많았다.
4년 차가 되어 마케팅 팀을 둘러보니 나와 쭉 함께한 직원은 단 3명만 남아있었다. 나머지 30여 명은 모두 새로 입사 한 친구들이었다. 공장과 관리팀 등까지 합치면 더 계산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앞으로 주재 생활이 마무리 되어가며 한국으로 복귀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내가 떠날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