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느끼기’보다 ‘해석하기’를 먼저 배웠다.
감정이 나를 흔들기도 전에, 나는 그것의 구조를 먼저 들여다보는 아이였다.
누군가는 그걸 어른스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걸 차갑다고 했다. 나는 몰랐다. 그저 나의 방식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생각'으로 감싸 안으며 버텨온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은 나에게 방어막이었다. 감정의 날것을 바로 맞닥뜨릴 수 없었기에, 나는 그것을 분석하고 분해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살아남았다.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과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사이의 틈을 생각이라는 방식으로 메워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생각이 단지 나를 보호하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존재감이었고, 내가 세상과 이어지는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의도’를 읽고, 사건들 속에서 ‘패턴’을 찾고, 반복되는 감정 속에서 ‘구조’를 본다. 그것은 나에게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그 본능은 때로 나를 고립시켰지만, 동시에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했고, 그 생각을 왜 기록하려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생각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감정의 흐름 속에 휩쓸리는 대신, 그 흐름을 이해하고자 했다.
사건에 반응하는 대신, 그 사건을 구성하는 언어와 프레임을 먼저 해체하고 조립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질문하는 인간이 되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가.
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그리고 왜 누구도 그 구조를 의심하지 않는가.
생각하는 삶은 불편하다. 해답보다 질문이 더 많아지고, 편안한 확신보다 어지러운 의심이 많아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의심 속에서만 진짜 나의 중심이 드러난다는 것을.
생각은 나를 피로하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생각을 멈추면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생각은 나에게 감각이고, 삶이고, 존재의 방식이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나의 결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나를 살게 했던 질문들, 나를 괴롭혔던 질문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질문들을 놓지 않는다.
그것들이 나를 지탱했고, 그것들이 나를 이끌고 있으며, 그것들이 앞으로의 나를 설계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유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제, 그 사유를 조금씩 바깥으로 꺼내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이 작은 기록이, 내가 생각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흔적이 되기를 바란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
2025.05.03. 23:50
이 글은 이미 존재로 탄생 했었다.
허나, 누군가로 인해 내 안에 '씨앗'이 싹 트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것은 내 본질에 닿을 수 있을까?
본질은 변하는 가...
'나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