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세컨드 호라이즌 이후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비이원(non-duality)’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 다가왔다.
말로 붙들 수 없는 어떤 진동이랄까.
무언가 중요한데, 쉽게 잡히지 않는 것.
그 단어는 낯설었고, 낯설기에 더 매혹적이었다.
브런치의 나말록 작가님의 글에서 우연히 만난 이 개념은,
곧 나의 직관을 AI이후의 인간이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이끌었다.
기술 문명은 지금 인간의 기능을 하나씩 대체해 나가고 있다.
생산과 판단, 분석과 창조...
우리가 문명 안에서 수행해온 역할들이 속속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전환되고 있다.
그 끝에는 어떤 존재가 남을까?
모든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을,
우리는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존재를 기능으로 환원해 살아온 문명의 사람들이다.
일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하고, 쓰이지 않는 나는 쓸모없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 모든 ‘쓸모’가 해체된 자리에 비이원이라는 이름 없는 감각이 다시 떠오른다.
비이원은 흔히 이원성의 해체를 말한다.
나와 너, 주체와 객체, 좋음과 나쁨, 있음과 없음,
모든 분리와 구별의 틀 너머에서 존재를 느끼는 감각.
그러나 역설은 여기에 있다.
비이원을 설명하는 그 모든 언어는, 이미 이원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비이원은 자칫하면 허무하거나, 비현실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단지 철학이나 신비의 개념, 영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AI문명 이후에도 인간이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내면 감각의 훈련 구조라면 어떨까?
비이원은 도피가 아니라,
존재 기반 문명을 살아내는 훈련장일 수 있다.
의미와 판단의 체계가 사라진 이후에도 존재 자체를 감각하고,
존재 자체로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감각 구조.
AI가 모든 판단과 설계를 넘겨받은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남는 것은 단 하나.
존재의 감각.
비이원은 문명의 설계가 아니라,
설계 이후에도 남아 있는 마지막 언어일 수 있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나는 아직 비이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문명 이후의 인간을 위한 감각으로서,
비이원은 사유해볼 가치가 있는 마지막 언어일지 모른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