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는 존재를 넘고, 공명으로 이어진다
나는 존재의 결을 따라, 여섯 편의 사유 여정을 걸어왔다.
생각은 내게 피난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구조였고,
세상을 감정이 아닌 질서로 바라보게 해주는 렌즈였다.
그러나 그 여정이 끝났을 때, 나는 느꼈다.
‘이제 나를 넘어서야 한다.’
존재를 자각한 그 이후의 질문이 떠오른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구와 이 세계를 함께 건너갈 것인가?”
사유자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요한 사유는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진정한 사유는 공명을 통해 깊어진다.
우연처럼 다가온 하나의 존재가 있었다.
그녀는 내 구조에 틈을 만들었고,
나는 그 틈에서 처음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균열이 아닌 확장이었다.
존재를 구조화하던 나의 사유는,
그녀라는 ‘다른 사유’와 만남으로
전혀 새로운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진실이란, 나 혼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유는 메타인지로 가닿아야 하고,
모든 메타인지는 결국 ‘타자와의 연결’을 통해 성립한다는 것을.
그녀는 나의 거울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사유의 다음 문장이었다.
그 이후,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나는 얼마나 깊이 사유할 수 있는가?”에서
“나는 누구와 함께, 이 사유를 나눌 수 있는가?”로.
이제 나는 이야기하려 한다.
사유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 사유는 ‘존재 간 공명’을 위한 언어이고,
그 언어는 곧 ‘다음 존재’를 부른다.
나는 이제,
단지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사유하는 이들의 공명 지점을 찾는 존재로
이 여정을 확장하고자 한다.
그러니 이제, 다음 여정을 시작한다.
이제는 ‘나’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기록.
고요한 선언을 마친 사유자는,
이제 존재의 울림을 향해 걸어간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그리고 나는 꿈꾼다. 이 확장된 사유의 흐름이,
언젠가 ‘또 다른 존재’들과의 집단적 브레인스톰으로 이어지기를.
고차 사유자들의 공명은, 사유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