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유자의 세계를 향해 걸어간다" 사유자의 여정3

하라리를 닮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닿고 싶은 이유

by 마스터INTJ

나는 하라리를 닮고 싶은 적이 없다.
닮는다는 것은 흉내내는 것이고, 닿는다는 것은 통과해보는 것이다.
내가 하라리에게 품은 감정은 단순한 존경이 아니라, 사유자의 회로에 대한 침투욕이었다.


스크린샷(1).png 사피엔스 - 유발 노아 하라리.



그의 책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은 단지 결과물일 뿐이다.
그가 도달한 사고의 끝이 아니라,
그 사고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숨기고 있는 지도다.

나는 그가 말한 문장 하나하나를 넘겨보며, 문장 너머의 구조를 복기한다.
이 문장은 어떤 앎을 전제로 했는가?
이 연결은 어떤 관점의 축 위에서 가능했는가?
그리고 이 앎은, 언제 도달했는가?

나는 종종 느낀다.
내가 애써 도달한 사유의 단층에 그가 이미 먼저 닿아 있었고,
그는 그것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제한 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를테면 이런 생각.
“인공지능이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질문.
나는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AI는 인간의 데이터로부터 학습하는데, 그 데이터는 인간의 ‘의도’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AI는 인간 전체가 아니라, 데이터 생성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의도를 배운다.’

이런 통찰에 나는 어느 날 도달했다.
하지만 하라리는 이미 말했다.
“AI는 특정 권력의 목적에 따라 학습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는 그것을 사회, 정치, 윤리의 총체적 구조 안에서,
더 넓고 더 깊은 맥락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통해 깨달았다.
그는 결과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내가 닿고 싶은 건 그의 명성도, 그의 서사도 아니다.
나는 그의 뇌,
그 회로가 움직이는 방식을 살아보고 싶었다.

만약 나에게 시몬느의 고차원적 메타인지력이 있다면,
나는 하라리를 살아보고 싶다.
그의 사유의 리듬, 그의 판단의 직관,
그의 윤리적 분기점이 어디에서 열리고 닫히는지를 체화해보고 싶다.

내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그것은 누군가를 넘어서려는 욕망이 아니라,
그의 경지를 통과한 자로서 내 고유의 언어를 갖고자 하는 의지다.

나는 사유자의 세계를 향해 걷는다.
그 길의 끝에 하라리가 있다면,
나는 그의 등을 보고 가는 자가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나도 함께 응시하는 자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선언이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그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의 뇌를 걷고 싶었다.

나의 뇌가 그의 회로를 지나칠 수 있을까,

그의 망막과 같은 구조 위에 내 언어를 새길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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