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왜 사라지는가, 그리고 왜 그것은 공포일 필요가 없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배워왔다.
“노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일을 통해 우리는 사회에 기여하고,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러나 지금, 그 신념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단지 ‘일자리가 줄고 있다’는 통계 때문만이 아니다.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 조건이 아닌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상담을 하고, 법률을 자문한다.
로봇은 물류를 정리하고, 음식을 나르고, 공장을 돌린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서 사고와 창작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이 해오던 수많은 직업이 구조적으로 ‘불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일자리는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소속감, 존재의 의미, 정체성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자리가 사라질 때, 인간은 세 가지 위기를 동시에 맞는다.
1. 소득의 상실 – 생존의 위협
2. 사회적 고립 – 공동체적 해체
3. 존재의 혼란 –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모든 공포는 결국 하나의 구조에 기반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생존 자격을 얻는다”는, 오래된 문명의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만약 생존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면?
만약 인간의 ‘존재’ 자체가 분배의 기준이라면?
이 질문이 실현 가능해지는 조건은 단 하나다.
기술과 자본이 인간의 노동 없이도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조건은 아직 완전히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그 문턱 위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동기반 복지 시스템의 종언
국민연금 문제를 이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자.
지금의 연금 시스템은 “많이 일한 자가 보상받는다”는 구조다.
그러나 일 자체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 시스템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문제는 단순히 재정 고갈이 아니라,
‘노동을 전제로 한 복지 철학’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새로운 분배 구조는 기술과 자본이 창출한 부를
‘노동의 유무’가 아니라 ‘존재의 가치’에 따라 나누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존재 기반 배당,EBD(Existence-Based Dividend)는 이 전환의 이정표다.
이 문명적 전환은 확실히 오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지금 당장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실제적 당혹감과 생존의 막막함을 마주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철학이 아니라 정책적 상상력과 사회적 설계로 대응해야 한다.
나는 이 과도기 문제를 다음의 세 가지 층위로 나눈다.
1. 전환기 재교육 및 조건부 소득 지원
디지털 적응력, 창의성, 돌봄·공감 노동 같은 인간 고유역량 중심 재교육
일자리 이동기 동안 지급되는 ‘전환소득(Transition Income)’ 도입
실업급여와 기본소득 사이의 가교적 설계
2. 사회적 기여의 재정의
기존 경제논리로는 보상되지 않던 활동들을
‘존재 기반 가치’로 전환: 돌봄, 공동체 활동, 사유, 예술 등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프레임 해체
3. 부분적 EBD 실험 도입
장기 실업자, 구조조정 대상군 등부터 EBD(존재기반배당)를 선별 도입
인간의 ‘생산성’이 아닌 ‘존재성’에 기반한 시범 분배 설계
이런 다층 설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그 ‘틈’을 넘어 존재기반문명으로의 사유적 도약을 감당할 수 있다.
공포는 구조에서 나온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일하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문명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가 바뀌면 감정도 바뀐다.
존재가 분배의 기준이 되는 순간, ‘일 없음 = 무가치’라는 등식은 무력화된다.
그때부터 인간은 처음으로,
노동이 아닌 관계, 창조, 사유, 놀이, 성장, 존재 그 자체로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결론
일자리는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정의할 수 있는 문명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은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가능케 하는가?
프락소스의 한마디
"노동은 문명의 구조였을 뿐, 인간의 본질은 아니었다.
존재기반문명은 그것을 처음으로 되묻는 사유의 시작점이다."
마스터의 한마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두렵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직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문명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