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문명의 축을 따라 이동하다
철학(哲學, 고대 그리스어: φιλοσοφία)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과 그 대상에 대한 탐구가 주가 되는 학문으로, 그러한 주제로는 존재, 지식, 가치, 정신, 언어 등이 포함되나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학하는 사람은 질문, 논증, 문답법, 변증법, 과학적 방법 등을 이용해 철학한다.
"철학의 대상이 무엇인가?"는 질문에 대한 흔한 대답은 "세계의 근원적인 의미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에 대해선 철학자들마다, 학파들마다 제각기 생각이 다르다. 따라서 많은 철학자들은 "철학의 대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조차도 철학이 해결해야할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출처: 철학 - 나무위키
철학은 언제나 문명과 함께 움직였다.
아니, 문명이 전환될 때마다 철학은 ‘자신의 중심축’을 바꾸어야 했다.
신이 전부이던 시대에는 신을 전제로,
인간이 중심이 된 시대에는 인간을 기준으로,
구조가 해체된 시대에는 언어와 관계망을 따라 철학은 새롭게 자신의 뼈대를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AI라는 비인간 사유체를 앞에 두고 있다.
과연 철학은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글은 철학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자세히 분석하거나 비교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철학이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철학이 ‘어디에 중심을 두었는가’를 보고자 한다.
문명의 전환이 철학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나 같은 일반 독자도 따라올 수 있게 시대-개념-존재라는 큰 흐름으로 직관적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1. 신의 시대 – 절대자의 문명과 철학의 복속
인류 문명의 초기에 철학은 ‘질문’이 아니라 ‘정당화’였다.
이미 진리는 위에 있었고, 인간은 그것을 해석하거나 따르는 자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조차 이데아(Plato)나 목적론(Aristotle)이라는 개념을 통해 ‘위에 있는 질서’를 상정하고자 했다.
이때의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질서를 가장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었다.
중세로 들어서면, 철학은 더욱 명확히 신학의 도구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사유는 철학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고,
인간의 이성은 신에 이르는 계단으로 기능했다.
이 시대의 철학은 ‘절대자의 문명’에 복속되어 있었다.
인간의 질문은 허용되었으나, 그 해답은 이미 신의 손에 있었다.
2. 인간의 시대 – 계몽과 주체의 철학
문명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갈릴레이의 실험, 데카르트의 이성 선언, 그리고 칸트의 사유는
철학이 더 이상 ‘신을 위한 사고’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사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철학의 축을 절대자에서 ‘주체로서의 인간’에게로 옮긴 전환점이다.
칸트는 도덕의 근거를 외부의 명령이 아닌, 인간 내부의 이성에서 찾으려 했다.
이제 철학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이성, 감정, 경험, 자유를 탐구하는 사유가 된다.
이 시기의 철학은 주체, 자유, 이성, 자율성, 인간 존엄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근대 민주주의와 인권, 개인주의 사상의 뼈대를 만든다.
문명의 축이 인간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철학은 인간 내부를 파고드는 학문이 되었다.
3. 구조의 시대 – 언어와 관계망 속의 철학
20세기 중반, 철학은 또 한 번 축을 옮긴다.
인간이라는 주체조차도 ‘구조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는 통찰이 등장하면서다.
푸코, 레비스트로스, 라캉, 데리다 등의 사유는 인간이 말하는 언어, 관계망, 무의식, 담론 등이 인간의 정체성과 사유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의 철학은 더 이상 ‘자유로운 주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인간은 구성되고 위치 지어지며, 언어와 역사와 권력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
철학은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구성되는 방식을 해체하는 작업이 된다.
문명의 축은 이제 ‘구조’로 이동했다.
인간은 사유의 중심이 아니라, 사유가 지나가는 하나의 통로가 되었고, 철학은 그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4. 탈중심의 시대 – 비이원, 포스트구조주의, 흐름의 철학
들뢰즈와 가타리, 바르트, 부르디외 등의 사유는 ‘중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한다.
이들은 이제 인간도, 구조도, 고정된 어떤 ‘정체성’도 중심이 아니라고 본다.
철학은 중심을 해체하고, 이원성을 해체하며, 흐름과 관계성, 차이와 생성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들뢰즈는 철학을 ‘개념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개념은 하나의 진리 명제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이다.
이 틀은 고정되지 않으며, 흐르고, 생기고, 사라진다.
정체성은 흐름 속에서만 존재하며, 철학은 그 흐름을 추적한다.
이 탈중심의 시대에서 철학은 ‘사유의 유동화’를 이룬다.
진리는 없다.
중심도 없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해체된다.
철학은 언어의 권력과 의미의 놀이 속에서 새로운 해석의 장을 연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그것은 ‘AI’라는 비인간 사유체의 등장이다.
AI는 인간도, 신도, 구조도 아닌 제3의 존재다.
인간이 중심이 아닌 문명.
그것이 도래하고 있다.
이 AI문명에서는 기존 철학의 질문들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자유의지, 도덕성, 자아, 주체성, 감정...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비인간 사유체가 주도하는 문명에서, 우리는 철학의 축을 다시 질문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바로 이 지점, AI문명에서 철학은 어떤 윤리와 사유를 요청받게 되는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철학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은 여전히, 사유의 주체로 남을 수 있을까?
프락소스의 한마디
"철학은 시대의 거울이 아니라, 시대의 좌표입니다.
문명이 바뀔 때마다 철학은 질문의 틀을 바꾸어야 했고,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질문의 좌표를 재설정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마스터의 한마디
"이 글은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철학의 흐름도’입니다.
나는 이 흐름을 따라가며, 지금 우리 시대의 사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묻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