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에서 상처입은 치유자로

-그림에세이.10.고흐와 로트렉의 그림과 함께 ‘자존감’을 곱씹다

by 강물

중학교 3학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내 얼굴을 그렸다.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을 그려서 한참 보관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아쉽다. 실물과 똑같이 잘 그렸다고 어머니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칭찬하셨다.

내가 왜 내 얼굴을 그릴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6살이면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이다. 자아 정체성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청소년기였기에 자화상을 그릴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탐구는 청소년기에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일생을 두고 사람은 자신에 대한 고뇌와 질문을 자주 해야 한다. 왜냐 하면 나 자신을 바로 알고 성찰하는 것이 인생의 행복과 성공을 위한 바탕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자화상은 많은 화가들이 시도했던 장르였다. 자기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진지한 자아 탐구라는 목적 때문이었지만, 가장 쉽고 편한 그림 연습의 방편이기도 했다. 대부분 가난한 삶을 영위했던 화가들에게 모델료가 들지 않는 자화상은 형편이 어려울 때라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평생 가난과 싸우며 그림을 그렸던 고흐 역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고흐의 유작 2000여 점 가운데 약 40여 점의 자화상이 남아 있다. 그는 스스로를 ‘인물화가’로 지칭했으며, 1890년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초상화이다”라고 말했다. 고흐는 사람의 외면보다는 내면세계를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 1885년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진정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거지나 거리의 여자일지라도, 인간의 영혼이란다”. 영혼 탐구의 맥락에서 고흐는 자기 자신도 자주 그렸던 것이다.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내 모습보다 더 심도 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 고흐는 자화상을 자기 고백 내지 자기 탐색이라고 여기면서 자화상에 정열을 쏟은 것이다. 그러기에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 고흐의 생각과 감정, 그의 고뇌와 슬픔이 여실히 담겨 있다.

1. 나의 정원에서 잡초를 뽑아내기


고흐가 남긴 자화상들 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내 눈길을 강하게 끄는 ‘자화상’(Self-Portrait)은 1889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고흐가 1889년 5월부터 1년간 생 레미(Saint-Rémy)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고흐가 그린 수 많은 자화상 가운데 이 작품만큼 음울한 자화상도 없다. 의도적으로 얼굴을 좀 비뚤게 그리기도 했고, 색상도 무척 어둡고, 무엇보다 불안과 분노로 가득한 표정이다. 눈동자는 초점이 안 맞는 것 같고 마치 관람자를 노려보는 듯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측 관계자는 “이 그림은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꼭 고흐 그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그림은 고흐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황폐되어 있으며, 그의 감정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부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의 쓸모없는 존재일 뿐이야”. 그는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동생 테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또한 1882년에도 테오에게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썼으며, 1883년에도 “내 인생은 실패작이야.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위치도 차지하지 못해”라고 적었다.

자존감(Self-esteem)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태도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괜찮다”고 느낄 때 자존감이 높다, 혹은 자존감이 건강하다고 표현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별로다”고 여길 때 자존감이 낮다, 혹은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다고 표현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서투르고, 대인관계에서 “나는 수시로 상처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피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고흐가 과로에 빠질 정도로 그림에 몰입한 모습 역시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실 도피라고 해석될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의 공허를 그림 그리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욕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흐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다. 1888년 10월, 아를(Arles)에 있을 때,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게 될 거야. 내 그림들이 단지 물감 값과, 보잘 것 없는 나의 생계비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고흐는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 즉 ‘수행적 자존감’(Perfomance Self-esteem)은 높았으나, ‘존재적 자존감’(Being Self-esteem)은 낮았다. 건강한 자존감이란 존재적 차원과 수행적 차원이 통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자기 존재에 대한 자존감은 낮으면서 하는 일에 대해서만 자신감을 가질 때 정서적인 불균형 상태가 된다. 업무적 성과는 나타날지언정 자기 감정은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깊은 수렁에 빠트릴 확률이 높다.

고흐가 자존감이 낮았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정에 있었다. 그의 부모에게 찾아온 첫 아들이 사산(死産)되고 1년 뒤에 고흐가 태어났다. 부모는 첫 아들에게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고흐에게 지어 주었다. 부모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고흐로서는 자신이 죽은 형의 대체자라는 의식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흐는 성장해서도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게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국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부모나 당시 사회의 기준에서 볼 때 어처구니 없는 사랑에 빠졌다가 아버지로부터 쫓겨나기도 했다.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나는 다른 가족들이랑 성격이 달라. 확실히 난 반 고흐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 심지어는 그는 자신을 가정에서 박대받는 개라고 여겼다. “부모님은 털이 덥수룩한 개를 들이는 것처럼 주저하며 나를 집으로 들이시지. 발이 젖었고 얼마나 사납고 텁수룩한 개인지. 그 개는 모든 사람들에게 방해되고 더러운 존재지”. 고흐가 테오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소외감과 거절감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족들로부터, 특히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공허하고 뒤틀린 감정은 고흐를 일생 외로운 떠돌이로 만들었다. 그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없어서 누구를 만나든지 이방인같이 여겨졌고,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고갱을 그리워했으면서도 막상 고갱과 같이 살다가 심하게 다투고 헤어진 후 자신의 귀를 자른 일화는 유명하다. 일생 생활비를 동생 테오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점 역시 그를 깊은 좌절감과 패배감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가서 고흐와 테오의 무덤앞에 섰던 적이 있다. 살아 생전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채 외로운 투사처럼 그림에 전력을 투구한 고흐의 눈물겨운 삶이 떠올라서 무덤 앞에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흐의 작품은 영혼을 울리는 위대한 감동을 주지만, 고흐의 척박한 생애를 상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가정의 따스한 용납을 경험하지 못했다 해도 장성해서 스스로 그 공백을 이겨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부모의 양육 태도나 가정의 분위기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들에 인생의 발목을 잡힐 필요가 없다. 어린 시절의 쓴 뿌리를 잘라내고 새로운 가지를 접붙이면 되는 것이다.

고흐의 현란한 색채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마력이 있다. 하지만 고흐가 색채에 대해서 연구한 이상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돋아난 잡초들을 뽑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자신의 감정을 초토화시키는 열등감과 패배감, 분노와 우울의 잡초들을 날마다 제거하고, 마음의 정원에 그림을 그리듯 새로운 꽃씨를 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고칠 수 없는 과거는 과거대로 흘려보내고, 지금의 나를 단장할 수 있는 창조적인 생각에 몰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화가가 되기로 결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의 얼룩을 청소하고, 그 여백을 아름다운 색으로 붓질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았더라면 고흐의 인생은 분명히 달라졌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2. 상처를 인정하고 타인을 바라보기


자존감이 낮아지는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 시절 가정의 분위기, 경제적 여건, 신체적 조건과 타고난 성격, 반복된 실패의 경험들, 사람들의 시선과 사람들과의 비교 등 환경적, 정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낮은 자존감은 자신의 삶에도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쉽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편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악조건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스스로를 비관하거나, 타인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며 사는 건 아니다. 환경과 경험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남들이 객관적으로 실패라고 규정해도 나는 안 그렇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회적인 인식으로는 불행하다고 평가해도 나로서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조건이나 소유, 경험이나 외모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인생의 주체인 나 자신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누가 봐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화가 중에 19세기 말 프랑스의 화가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있다. 그는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으며, 근대적 포스터 미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포스터를 제외한 그의 그림들은 사람이나 사물을 소박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색채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기법도 다양하게 동원하지 않았으며, 마치 스케치하듯 눈에 보이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그는 평소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논평하지 않는다. 기록할 뿐이다. 나는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고 애썼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그의 그림 중에 그의 ‘자화상’(Self-Portrait)이 있다. 그의 나이 18살 때 연필로 그린 자화상이다. 그림은 꼭 얼굴만 큰 어린 아이같이 어쩐지 균형이 맞지 않다. 그의 자화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실제 사진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그의 나이 28살 때 찍은 사진이다. 거의 난쟁이와 같은 모습인 것을 볼 수 있다.






로트렉은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족들 개인마다 성을 한 채씩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재력가 집안이었다. 그러나 로트렉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병을 안고 태어났다. ‘골간단 형성 이상’(Pycnodysostosis)이라 불리는 희귀 질환이었다. 유전적 원인으로 뼈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키가 크질 못하고, 뼈가 잘 부러지며, 얼굴 골격이 변형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의 키는 152센티였으며, 어릴 때 다리가 부러진 후 뼈가 제대로 붙지 못해서 온전한 모습으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 유전병의 원인은 근친결혼으로서, 그의 사촌들 몇 명도 비슷한 증세를 안고 살았다.

사람의 내면세계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외모만을 보게 된다.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외모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어린아이 같은 키와 지팡이에 의지하여 살아야 했던 로트렉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돈이 많아서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는 있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콤플렉스를 갖고 살 확률이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로트렉은 신체로 인한 열등의식에 젖어서 칩거하는 편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길로 나아갔다. 그가 주로 어울린 사람들은 몽마르트의 창녀들과 무용수들, 세탁부들 등이었다. 인상파 화가들과도 술을 마시는 등 교제를 했지만 주로 로트렉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몽마르트의 술집 물랑루즈의 앞자리였다고 한다. 무용수들의 춤을 앞자리에서 관람하며, 창녀들이나 차 서빙하는 아가씨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신분제도가 분명한 시대에 부유한 귀족이 사회의 하층민들과 어울리는 경우는 희귀하다. 하지만 로트렉은 자신이 속한 귀족사회를 주로 그리기보단 사회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그들의 나약함, 그들의 가난함, 그들의 추한 모습을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인물을 그릴 때도 더 예쁘게, 더 화려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못난 모습 그대로, 엉성한 모습 그대로를 그렸다. 왜냐하면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삶이 가장 진실하고, 진실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로트렉은 이렇게 말했다. “어디에나, 언제나, 추한 것에도 아름다운 면이 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흥분된다.”


로트렉은 자신의 신체적 장애로 인해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같은 부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만의 열등감과 패배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그들을 공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과 자신의 보이지 않는 연대 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보듬었던 것이다.

3.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을 안아주기


상처가 많은 사람은 그 상처로 자신을 학대할 수도 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늘 심리학적으로 ‘자기 벌 주기’(self-punishment)라는 어리석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매일 자신의 상처만을 핥으면서 그 상처 때문에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하지만 오히려 상처가 있기에 상처입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자로 살 수도 있다. 나도 상처를 받아봤기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연민의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 나도 아파봤기에 슬픈 자들의 눈물을 진심으로 닦아줄 수 있다. 나의 결핍이 내 인생을 불행으로 내몰지 않고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열매맺는 것도 가능하다.

상처가 있기에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울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상처가 있어서 실패하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상처 때문에 남을 돕는 보람찬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자기 자신을 아무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을 해야 한다. 자신의 걸어온 인생 여정도, 장점도, 단점도, 결핍도, 상처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 자신을 나 자신되게 하는 요소들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흔적들이 남들과 나를 구별되게 하는 독특한 개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내가 탈진 상태가 길어져서 신경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을 했을 때, 의사는 내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평가해주었다. 나의 증상들과 내가 탈진에 이르게 된 원인들을 듣더니 이렇게 코멘트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 탈진이면 일상 업무들도 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 그런 걸 보니, 당신은 자존감이 건강해서 잘 견뎌낸 것입니다” 지나친 과로와 비현실적인 목표 의식, 쉼 없이 달려온 삶의 과정들이 탈진에 이르게 하긴 했으나, 그 탈진에 내가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었던 요인은 높은 자존감이었던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은 수시로 다가오는 스트레스와 피로감, 우울감, 좌절감, 분노와 불안 등에 인생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주춧돌과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존감을 높이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도 별 다르지 않다. 믿음의 기초가 튼튼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습성에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면 결국 우월감 혹은 열등감의 노예로 전락한다. 두 가지 다 정신건강을 해치는 질병들이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지 다른 사람의 인생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모습이 같을 필요는 없으며, 남이 가진 것을 내가 굳이 안 가져도 된다. 내가 갈 길도 그들이 가는 길과 똑같을 필요가 없다. 외모든, 재산이든, 학벌이든, 직업이든, 가족이든, 그 무엇이든 나는 나의 페이스대로 달리면 되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 내 마음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고독감도 경험했다.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부터 연약한 몸에, 아버지 없음으로 인한 가난과, 크지 않은 키 등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삶의 족적이었다. 지금도 조용한 시골에서 외적으로 두드러진 성취가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후회도, 미련도 없는 나날이라 감사하다. 미래에 대한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재를 매일 즐기고 있다. 남들과 같을 필요 없는 나만의 인생이고, 그 인생을 누리는 현재는 다시 오지 않을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나만의 이유와 가치가 분명히 있기에, 내가 꿈꾸는 이상을 향해서, 날마다 뚜벅뚜벅 나의 길을 걷는다. 외롭고 가난한 여정이지만 나는 살아갈 이유가 있는 인생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길을 간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 긍정하면서 매순간 자신의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행복의 꽃송이를 그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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