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낫배드커피 한남'
동네 친구가 있다. 오랜 친구 같은 언니가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 어린이집도 인근이어서 자차로 등원시켜 줄 때마다 혼자 나를 볼 때가 있단다. 아침에 운동 겸 가까운 동산으로 나서는 나를. (나는 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그게 혹시 너였니?'라는 카톡이 왔었다.) 그렇게 '자유부인'인 낮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작년 말, 겨울을 앞두고 추워지기 전에도 함께 광장시장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언니랑 만나기로 한 날의 저녁에도 선약이 있어서, 보다 가벼운 메뉴를 먹고 싶었다. 양식, 중식보다는 한식이나 일식으로. 그렇게 메뉴를 찾다 보니 강된장쌈밥이 유명한 식당을 찾게 되었다. 성수에 있는 줄로 알았는데, 한남에도 지점이 있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곳으로 위치나 메뉴도 딱이었다.
언니와 가까운 정류장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한남동으로 이동했다. 날씨는 이제 정말 봄이었다.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었지만, 결정적으로 겉옷의 두께가 얇아졌다.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좀 걸었다. 한강진역 부근의 대로변은 종종 가봤지만 골목 안쪽은 거의 처음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로 걸어보다가 눈에 띄는 건물을 발견했다.
중앙부에 작은 광장이 있고 둘레에 벽을 세운 3층짜리 건물. 지어진 지 얼마 안 된듯한 밝은 회색빛. '여기는 또 어떤 곳이야?' 먼저 발견한 언니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알고 보니, 내가 미리 찾아봤던 카페였다. '이따가 밥 먹고 가보려고 찾았던 카페야! 이따가 와보자.' 덕분에 동선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주변 한남동을 더 둘러본 다음, 미리 봐뒀던 그 카페로 향했다.
'낫배드커피 한남'. 갤러리도 함께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여백의 미가 넘치는 공간이었다. 카운터 가까이에는 서서 마실 수 있는 자리만 따로 있었고, 손님들이 앉는 테이블들은 그 건너편 동의 1층과 2층에 있었다. 모처럼 따뜻해진 날씨에 이제 차가운 걸 마셔도 되겠다 싶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디저트들을 주문했다.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건너편 동으로 향했다. 우선 전망이 잘 보일 것 같은 2층으로 향했는데, 웬걸. 우선 나란히 앉아야 하는, 목재로 만든 벤치형 좌석만 있었다. 결정적으로 조명이 아직 어두워서 들어가도 되나 싶었다. 결국 커피와 디저트 쟁반을 든 채로 입구에서 조심조심 돌아 나왔다. (나중에 다시 가보니 조명을 새로 켜두었다. 개장하기 전에 우리가 들어갔었던 것 같다.) 이윽고 1층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이 놓인 자리로,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앉았다. 1층 내부도 여백이 가득했다. 벽 쪽에는 크고 작은 식물 화분들이 놓여 저마다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높은 천장과 통창. 자리에 앉으니 카운터와 중앙 광장이 내다 보였다. 중앙 광장에는 2층에서 봤던 목재 벤치들이 오와 열을 맞춰 놓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에도 손님들이 앉기 시작했다. 이제 테라스를 즐길 수 있는 날씨구나.
디저트로는 티라미수 타르트도 있었다. 티라미수 자체가 케이크인데 타르트로도 있다니. 이곳에서 진행 중인, 인근 유명 베이커리들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로컬 베이커리 페스티벌' 덕분에 만난 디저트다. 칼로 반을 자르자, 언니가 손으로 한쪽을 번쩍 집어가 버렸다. 포크로 조금씩 떠먹을 줄 알았던 나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그 호쾌함에 감탄하며 나도 나머지 한쪽을 손으로 집었다. 그래, 타르트 하나를 손에 들고 베어 먹는 오랜 로망이 있었다. 기대 이상의 맛을 느끼며 마음도 후련해졌다.
"저기 옥상에도 올라갈 수 있나 봐!"
티타임의 막바지, 바깥쪽을 보던 언니가 대뜸 말했다. 외국인 두 명이 2층부터 나 있는 계단을 통해 옥상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우리도 따라나섰다. 인사동에 있는 쌈지길처럼,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 있는 형태의 건물. 그 맨 위층에는 루프탑에 철제 테이블과 벤치, 대형 파라솔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남동 건물들의 지붕으로 이뤄진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 여기저기 직접 돌아다녀볼 일이다. 1층에만 감탄하고 갈 뻔했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이 루프탑에도 손님들이 많이 올 텐데. 마치 숨겨진 공간을 볼 수 있는, 가오픈의 특권 같았다. 건물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기만 한 듯한 한남동 한복판에, 이렇게 여백들이 많은 공간이라니. 나도 모르게 찾아온 봄에 나선 나들이가 더욱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