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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Jun 21. 2022

플레이팅의 중요성

양배추 달걀 만두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짧은 레시피 동영상을 보았다. 보통 내가 레시피를 보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다. 인터넷과 SNS 등에서 우연히 보거나, 먹고픈 음식이나 재료 위주로 직접 찾아보는 것. 이번에는 전자다. 다이어트 식단을 주로 공유하는 듯, 낮은 칼로리의 건강한 재료로 맛있게 만든 요리들 중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한 입 크게 물면 입 안에 꽉 차는 식감의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영상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재료는 양배추, 파, 달걀, 굴소스, 라이스페이퍼. 파기름을 낸 후 채썬 양배추를 볶다가, 한 켠에 달걀 스크램블을 만들어서 함께 섞는다. 그리고 볶는 와중에 굴소스를 넣어 간을 맞춰준다. 그 다음 라이스페이퍼에 볶은 재료를 넣고 만두처럼 돌돌 만 다음, 다시 후라이팬에 구워주는 것이다. 재료와 방법도 간단해보이고, 무엇보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파와 달걀은 집에 늘 구비되어 있던 재료였고, 굴소스도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걸 집에서 보고 나왔다. 라이스페이퍼는 이전에 사 두긴 했는데 양이 어떨지 몰랐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양도 넉넉하고 유통기한도 많이 남았다고 한다. 내가 요리를 할 것 같은 낌새를 보이면, 저녁 차리기를 부담스럽고 귀찮아 하는 우리 엄마의 기대감이 높아지므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역시나 '뭐 만들어 먹으려고?'라는 질문이 돌아왔지만, '언제 한 번 먹으려고'라며 둘러대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사야할 재료는 양배추. 한 통은 너무 많으니 1/2나 1/4통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즉시 시장 조사에 들어갔다. 점심 시간 산책 시간을 회사 주변 시장과 마트들을 돌아보는 데 짬짬이 활용했다. (지금 쓰면서 보니 왜 이렇게까지 치밀했을까... 누가 계획형 아니랄까봐) 회사 근처 한 마트에서 양배추 반 통이 1,500원이었다. 뭔가 아쉬움이 느껴져 일단 내려놓고, 집 근처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어찌나 고민이 되던지! 지금 시장에서의 가격이 더 쌀까봐... 하지만 마트에서는 퇴근 시간대마다 이른바 '유통기한 할인'으로 내놓는 식료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유통기한 임박인 양배추 반 통을 440원 가격에 사는 승전보를 울릴 수 있었다.

  



목요일은 저녁 요가를 가는 날이다. 보통 퇴근 후 약 30분 동안 쉬다가 운동을 하러 간다. 하지만 이날은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놀렸다. 요가 가기 전 대략의 밑준비를 끝내놓고, 다녀온 후에 요리를 마무리한 다음 샤워를 하고 나서 그 요리를 살짝 데워먹는다. 이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손이 빠르지 못했다. 요가를 가기 전 채썬 양배추와 달걀 스크램블을 굴소스와 볶아두는 것까지 마무리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그만 두었다. 여기서 라이스페이퍼를 꺼내들면 더 멈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요가 선생님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호흡에만 집중하며 동작을 할 것을 강조했지만, 이날 내 머릿속은 양배추로 가득했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재료들과 마주했다. 라이스페이퍼를 따뜻한 물에 적신 다음, 속재료를 덜었다. 생각보다 통통하게 말기는 어려웠으나, 나름 이리저리 굴려가며 완성했다. 공복감에 그냥 먹어버릴까 유혹도 많이 느꼈지만, 마지막 굽기까지 꼭 거쳐야 했다. 꾹 참았다. 만드는 모습을 본 엄마와 동생도 같이 잘 참아주었다.


굽는 일도 순탄치 않았다. 심이 강했던 양배추가 삐져 나오기도 하고, 골고루 구워주려는 과정에서 라이스페이퍼가 젓가락과 붙어 찢어지기도 했다. 또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거 앞으로 또 해먹을 수 있으려나?' 현실과 이상의 벽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잘 구워진 면을 위로 올려 접시에 담았다. 플레이팅은 살짝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먹는 사람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것 말고도 다른 역할이 있었다. 바로 미숙한 요리 실력을 조금이나마 감출 수 있다는 것! 음식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름 소담하게 사진까지 찍고 나면 그래도 뿌듯하다.


생각보다 조리 시간이 길어져 샤워를 하고 나와서 먹겠다는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그래도  하나의 레시피를 정복했다는 것과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한 저녁이었다. 저녁이 아니라 거의  10...



이래놓고 생각한다. 맛있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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