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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Aug 06. 2022

'휴가'와 '방학'의 차이

물놀이, 그리고 제주 돼지고기와 빙수

몇 주 전, 친한 동생 J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니! 우리 물놀이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어느덧 세 살배기 아이의 엄마가 된 J. 그의 남편인 H와도 친한 사이였기에 이 부부는 종종 자신들의 나들이에 나를 초대해주곤 했다. 생각해보니 J는 결혼하기 전에도 나를 이끌어 싱가포르와 대만 여행을 함께 다녀왔었다. 추진력이 보통이 아닌 친구였다.


이번 물놀이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나의 마음은 사실 심란한 상태였다. 퇴사와 알 수 없는 미래를 앞두고 마음이 괜히 뒤숭숭하던 때. 함께 놀러 가고는 싶었지만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달라며 양해를 구했고, J는 흔쾌히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퇴사 후 새로운 루틴을 맞이하게 된 8월. 다시 J로부터 연락이 왔다. 막상 막연하던 8월을 마주하고 나니 거절할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걱정과,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놀 수 있을까 하는 호기로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결과는 호기로움의 승리! J, H 부부와 세 살 아이, 그리고 그 부부와 함께 아는 다른 동생들 W, D까지 총 여섯 명이 물놀이 멤버로 확정되었다.




물놀이 당일에는 오후 3시에 모이기로 했다. 그래서 그전에 시간이 되는 W와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장소는 팔당역 근처의 한 이탈리아 화덕 피자 레스토랑. 한옥 외관과 정원을 가진 아기자기한 식당이었다. 대기 명단을 걸어놓고 정원 내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름휴가 기분으로 바캉스 룩을 입고 온 W와 달리, 물놀이 전후의 편안함만 신경 쓴 나는 반팔 티셔츠,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때 W의 센스 있는 한 마디는 이날을 확실히 기억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언니는 여름방학에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꾸러기 같아요!"


이 순간부터, 나의 여름방학은 시작되었다.




오후 3시가 지나 물놀이의 모든 멤버가 모였다. J, H 부부의 아이와 함께 유수풀에 둥실 떠다니기도 하고, 콸콸 수압이 솟아오르는 바데풀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워터 슬라이드에 몸을 던졌다가 쫄딱 젖기도 하고, 워터파크 내의 높은 물가를 느끼게 하는 간식거리도 먹고. 무엇보다 적당히 맑은 날씨 아래 즐겼던 야외 풀장에서 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이었지만) 그 어린 시절을 함께한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니, 정말 여름방학 같다고.


물놀이를 마칠 무렵, 저녁 메뉴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역시 물놀이 이후에는 고기지! 그래서 J, H 부부네 본가 근처에 있는 제주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모두가 풀장에서 적잖이 힘을 소모한 만큼, 누군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자는 의견에도 이견이 없었다.


이날 고기는 누군가 겨우 사진을 찍어 남겼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후에는 빙수 가게에서 2차를 가졌다. 빙수 가게로 이동할 때 H의 누나, 그러니까 고모가 나와서 아이를 맡아 데려가 준 덕분에 모처럼 친구들끼리 남게 되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옛날 생각이 났다.


빙수까지 다 먹고 돌아가는 길의 밤공기는 적당히 습하고 적당히 시원한, 정말 여름밤 같았다. 여름밤의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날 우리의 기분에는 더할 나위 없는 여름방학과 여름밤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한 가지 다짐 같은 나만의 정의를 내려본다. 이번 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무언가를 즐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걱정한 것치고는 재밌게 놀다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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