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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Aug 04. 2022

여름 소화제는 통닭이지

한방통닭

맛집을 처음 알게 되는 경로는 대부분 비슷하다. 지인들과의 약속을 위해 만날 장소를 정할 때, 방송이나 SNS에 소개된 콘텐츠를 볼 때. 크게 두 가지 경로다. 이번에 이야기할 한방통닭은 후자에 속한다. '먹교수'라는 애칭을 얻은 이영자 씨가 소화제로 여긴다는 이 음식.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였다.


오며 가며 그 가게의 웨이팅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들었다. 주문을 하고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나. 하지만 주문을 하며 남긴 연락처로, 자리가 나거나 포장 음식이 나왔을 때 직접 전화를 해 준다고 했다. 웨이팅 어플의 알림도 아닌, 인간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말이다.


루틴의 변화로 하루의 시간이 넉넉해진 요즘. 한방통닭 포장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오후 4시에 오픈한다고 하니, 가족들의 저녁식사 시간을 예상했을 때 5시 정도에 가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이전 일정이 있었던 왕십리에서 경의중앙선 지하철을 타고 한남역으로 향했다. 경의중앙선은 배차 간격이 사악(?)하지만, 지하가 아닌 지상을 많이 달리는 점만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지하철 안의 에어컨과 함께 바라본 차창 밖 풍경은 그저 깨끗하고 화창하기만 했다.




가게에 도착했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벌써 내부는 어느 정도 꽉 찬듯했다. 평일 오후 5시인데 벌써 손님들이 이렇게 오다니. 나는 연락처와 함께 주문을 맡겨 놓고, 가게의 외관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자 전기 화덕 앞에 있던 직원분이 말을 걸었다.


"사진 찍으시려고요? 문 열어드릴까요?"


당황해서 답을 머뭇대는 사이 직원분은 거침없이 화덕의 문을 여셨다. 통닭 몇십 마리가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구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보여주신 쇼맨십을 거부할  없어 얼른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걸어올지 몰라 내심 겁났던(?) 나는 부랴부랴 미리 알아봐 놓은 주변 카페로 향했다.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그라데이션이라니




카페 벽에는 다양한 사진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으며, 한편에는 외부 작가의 그림 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짧은 30분이라는 한방통닭 웨이팅 시간에 놀랐지만,  안에 티타임을 즐기기에 충분한 거리와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여기저기 걷느라 바빴던 내게, 그곳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이었다.


얼마 있자니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잘 안 받지만. 이 전화는 반갑기만 했다. 그렇게 전화를 받고 찾아가니 내가 오겠다는 시간에 맞추어 두 마리를 포장해주었다. 그동안 나는 수더분한 직원분들 덕분에 짧고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어디 가 계셨어요?" / "카페요? 이 근처 어느 카페요? 이름이 뭐예요?"


카페 이름을 알려주니 자기들도 안다고 하면서, 얼마 전에 한 아이돌 가수의 팬 행사를 한 것 같다며 직원들끼리 두런두런 수다를 떤다. 그러더니 나한테는 그 아이돌 가수의 팬이냐고 대뜸 물었다. 나는 얼른 아니라고 하며, 그냥 우연히 알게 된 곳이라고 했다.


분명 여기 직원분들은 외향형일 것이다. 그저 조용히 가고 싶은데, 내가 이미 탄 택시의 기사님이 수다쟁이인 걸 알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래도 이 더운 날씨, 화덕 앞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이런 소소함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할까. 그렇게 이해해보기로 했다.




묵직한 포장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퇴근길에 자식들을 위해 통닭을 사 온 가장이 된 것처럼. 아빠와 동생에게 얼른 최대한 빨리 오라고 카톡까지 남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때늦은 중복 파티를 벌였다.


닭고기 살과 그 안의 찹쌀, 그리고 김치까지. 한 입에 싸서 먹으니, 이영자 씨가 소화제라고 표현한 이유를 좀 알 것 같았다. 보통 치킨 등의 닭고기를 먹으면 오는 그득한 포만감보다, 뭔가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크기가 작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우리 가족 네 명이 먹기에 두 마리의 양은 적당했다.


유명한 맛집을 다녀오고 나면, 뭔가 정복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이번에도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었다. 한방통닭 가게 문에 쓰여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한방통닭의 비법은 어디에도 공개한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원조' 단어를 붙여가며 우후죽순 앞을 다투는 식당들이 생각났다. 진짜는 진짜구나. 굳이 힘을 들이지 않아도, 진짜가 가진 위엄과 카리스마는 저절로 드러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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