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pe Jan 02. 2023

오늘의 기사님과 나눈 대화

새해 감동과 새벽 감성이 만났을 때

"서울은 이 시간이 제일 조용한 것 같아요."


새벽 4시 좀 지난 시간. 한강 다리 위를 달리던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동차 불빛은 점점이 보이고, 가로등 불빛은 더 반짝이는 듯했다.


신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 새벽기도회의 한 순서에 참여하기 위해 보다 일찍 도착해야 했다. 기도회 시작은 새벽 5시 30분. 먼저 가야 하는 나는 4시 30분까지 가야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존에 타던 버스의 첫차 시간이 새벽 4시인 것을 보고 안심했는데. 웬걸. '첫차 시간 =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시간'임을 집을 나서기 직전에서야 깨달았다. '1시간 40여 분 뒤 도착'이라는 지도 어플의 문자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일단 큰 길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평소 택시를 잘 타지 않는 탓에 택시 어플도 없었다. 나가보면 부지런한 기사님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나섰다.


큰 길가에 다다라서 둘러보니, 한 차선 너머 불을 밝히고 정차해 있는 택시가 보였다. 저 빛나는 글씨가 '빈 차'일까, 아니면 '예약'일까? 조마조마하면서 자세히 보니 '빈 차'다! 종종거리며 달려가 창문을 두드려 인기척을 내었다. 그러자 기사님이 깜짝 놀라며 타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주셨다.


한 차선을 종종거리며 갔던 것도 그렇고, 나는 대뜸 택시에 타자마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게 무슨 용기였을까. 순간 나에게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질문이 떠올랐다. '이 기사님의 성향은 어떨까?'


기사님이 어떤 성향인지에 따라 택시 여정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과묵하면 끝까지 조용히 갈 것이고, 밝고 유쾌하거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끝까지 대화를 나누며 가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늘의 기사님은 후자에 가까웠다. 나의 새해 인사를 아주 밝게 받아주셨다.


택시를 운전하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사방에서 손님을 만난단다. 전혀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동네에 손님을 내리고 나면, 곧바로 다음 손님이 어디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오늘의 나처럼. 그저 앞을 보며 있었는데, 한 차선을 건너 손님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기사님은 멋쩍게 웃으셨다.



그렇게 만난 기사님과 여정을 함께하며 나눈 또 하나의 대화.


"나이가 드니까, 갑자기 모든 것에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요약하자면,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서 종목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를 챙겨보며 지냈는데, 어느 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는 것이다. 열심히 리액션을 하며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오지랖을 넓히고 말았다.


"그래도 마침 새해를 맞았으니, 다시 흥미를 찾으시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역시 그런가. 내게 스치는 시간과 만남과 사건들은 모두 한순간이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버린다. 열심을 쏟던 것도 어느 순간 허무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때그때 꾹꾹 눌러 즐기자. 하고 싶은 걸 하고, 맘껏 표현하면서.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로 가득 채우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고, 새벽 택시 안에서 다짐하게 됐다.

작가의 이전글 2022 F/W 신상, 눈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