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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Dec 19. 2022

2022 F/W 신상, 눈사람

한 땀 한 땀 내 손으로

초등학생일 때, 학교 수업 중에 눈이 오는 걸 보면 종이 울릴 때까지 발을 동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면 곧바로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그렇게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눈을 뿌리고 뭉쳐 던지며 마냥 신이 났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눈으로 인한 신남이 온몸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눈이 오면 길을 어떻게 오갈지부터 걱정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매년 겨울, 눈이 올 때마다 꼭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눈사람 만들기.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울 만큼, 허리 높이에 올만큼 큰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무리다. 내가 만드는 것은 손 한 뼘보다 조금 큰 크기의 미니 눈사람이다.


며칠 전 눈이 펑펑 내렸다. 흩뿌려지는 싸라기눈이 아닌, 송이송이 천천히 내리는 눈. 나도 모르게 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섰다. 아직 사람들이 밟거나 치우지 않은, 쌓인 눈 쪽으로 일부러 걸어가며 발자국을 남겼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 한 곳으로 걸어가 장갑 낀 손으로 눈을 뭉쳐보았다. 그런데 웬걸. 눈이 뭉치지 않고 부서지며 장갑에 붙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남아나는 눈이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장갑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맨손으로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가는 동안 내 손은 빨갛게 얼어갔다. 이따금씩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풀어주었다. 두 손아귀에 눈을 뭉쳐 공을 만든 다음, 눈이 쌓인 곳에 살살 굴려가며 그 크기를 키웠다. 그렇게 몸통을 만들고, 머리를 조금 더 작게 만들어 얹어주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얇은 나뭇가지로 두 손과 삐침 머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뭇가지 구조상(?) 내 눈사람의 손가락은 늘 두 개뿐이다.


그리고 초록 이파리로 눈을, 붉은색 이파리로 입을 만들어 붙여주었다. 식물의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나의 눈사람에 조금씩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니 마냥 고맙게만 느껴졌다.



매년 이렇게 만든 미니 눈사람들을 비교해보면, 표정이 조금씩 다르다. 재료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정을 그때마다 만들어내는 것인데. 비슷한 재료로 이렇게 매번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올해의 눈사람도 여기저기 옮겨가며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하고픈 사람들에게 짤막한 메시지를 더해 보냈다. 눈이 많이 와서 눈사람을 만들어보았다며. 보고 싶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누군가는 참 따뜻하다고 말해주었다. 실상은 차가운 눈으로 만든 눈사람인데. 어떻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까.


눈이 내리는 풍경은 어떻게 보면 참 포근하게 보인다. 온갖 일이 많았던 올해. 수없이 웃고 울었으나, 연말이 되어서 돌아보니 그저 잊지 못할 따뜻함이 남는 시간들이었다는 걸까.


그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눈이 오고, 눈이 쌓여야만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 눈사람은 현재를 향한 온전한 집중, 애정의 산물이다. 눈사람을 만들 때의 장인 같은 마음. 그런 삶의 자세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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