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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Dec 07. 2022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지잖아

선물, 꽃향기에 담긴 의미

"선생님 :)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잘 보내셨나요? 다름 아니라... 언제 한번 선생님과 데이트하고 싶어서 ㅋㅋ... 무턱대고 먼저 연락드렸어요 :D"

"데이트 합시다~~♡♡♡ 나야 너무 좋지요!!!"



작년 초부터 매주 교회에 갈 때마다 뵙는, 50대의 어른. 그분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어느덧 12월이 되어 연말연시를 앞두고 나니,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꼭 따로 뵙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연락을 너무나 반겨주셨고, 어느 평일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로 정한 식당에 도착했다. 선생님께 카톡을 드려보니 역에 다 도착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상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여기 입구가 좀 헷갈리던데, 찾는데 어려움을 드린 건 아닌가'하며 15분 정도 더 기다렸던 그때. 선생님께서 식당에 들어오셨다. 웬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역에 도착했는데 꽃집이 보이기에, 선물로 주려고 사 왔어요."

  



늦어서 미안하다며 건네주신 꽃다발. 감동을 느껴버린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여기에는 나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나는 지인들에게 종종 꽃 선물을 하곤 하는데, 그 모습을 눈여겨보신 모양이었다. 물론 예전에 선생님께도 꽃을 선물해드린 적이 있다. 감사하게도 그때 그 꽃을 나름 각별하게 생각해주셨나 보다.


예전에는 효용성(?)만을 생각한 나머지, 꽃 선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실생활에 크게 쓰이지도 않고, 어차피 금방 시들어 버리지 않나?' 하면서.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꽃집에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화병을 놓고 한 송이씩 꽂아놓기도 하면서. 서서히 꽃과 친해지고 있었다. 지금 이만큼 잎을 피우기까지 겪은 시간들, 모든 애정이 소중히 모인 집합체가 바로 이 꽃들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랬던 나의 과거를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의외라는 듯 대답하셨다.


"그래? 그래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지잖아."


맞아. 의미도 의미지만.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감사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 선물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이날 식사를 함께 하며 나눈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께서 한때 캐나다에서 지내셨을 적 이야기다.


"교회 행사 준비 때문에 장미꽃이 필요해서 시장에 갔었어요. 가보니 정말 예쁘고, 보암직한 장미꽃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아름 사 왔죠. 그리고 집에서 새로 포장을 하려고 꽃들을 풀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향기가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크고 탐스러웠던 장미꽃. 알고 보니 상품성을 높이고자 모종의 작업을 거친 꽃들이었다. 자연에서 스스로 자란 꽃이 아닌, 사람들의 손을 탄 꽃들. 자연에서 자란 꽃은 저마다의 향기를 간직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사회성 동물이니만큼 주변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라는 꽃의 향기를 잃지 않을 만큼, 나를 지킬 만큼의 중심과 이기심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사람들과 있을 때 나의 다른 점들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것을 이상하게만 여기지 말고, 나만이 가진 향기라고 여기며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다. (사회 법규를 헤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등 도덕성을 헤치지 않는 이상.)


'어느 사람과 다른 사람'이 아닌, 그냥 '그 사람'인 거다.




이렇게 꽃다발과 함께 소중한 이야기를 선물 받은 것 말고도, 누군가 내 주변에 들려주기라도 한 듯. 나의 소소한 바람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추운 날씨 몸보신 메뉴로 국밥을,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힐링 코스로 바다를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생각지 못한 저녁 약속 메뉴로 순대국밥을 먹었으며, 갑작스러운 드라이브 동행으로 강원도 양양의 겨울 동해바다를 당일치기로 보고 왔다.


이렇게 두드러지는 이벤트가 아니어도, 내 하루하루에는 크고 작은 감사가 넘쳐날 텐데. 한번 찬찬히 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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