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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Nov 22. 2022

주고받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물

DIY 빼빼로

11월 11일. 1이라는 숫자들이 모여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날인데, 어느 해부터인가 더욱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바로 빼빼로데이다. 혹자는 상술이라며 그에 휩쓸리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어느새 빼빼로 DIY 키트를 주문하고 있었다. 상술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빼빼로를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로 삼고 싶었을 뿐이다.


'~데이'는 그 선물이 되는 아이템들의 수요가 폭증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마침 특별한 선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나도 빼빼로를 직접 만들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과자와 초콜릿부터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빼빼로'가 탄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스틱과자, 초콜릿(중탕하기 전 동전 모양), 짤주머니, 각종 스프레드와 크런치, 그리고 포장지까지.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딱 좋은 구성이었다. 예상 소요시간은 한 시간 정도라고 했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걸릴 것이 분명했다.


식탁 위에 재료와 도구들을 펼쳤다. 초콜릿 코인을 담은 짤주머니를 긴 원통형 컵에 담은 다음, 그 컵에 따뜻한 물을 부어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여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 스틱과자를 담갔다 빼며 초콜릿을 입혀주었다. (예전에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며 초코콘을 만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생각보다 초콜릿이 금방 굳지 않았고, 그 양도 가늠할 수 없어 어느 정도 굳기까지 멍하니 기다려야 했다. 적당히 입혀진 초콜릿이 굳기 전에 빠르게 각종 크런치와 스프레드를 손으로 솔솔 뿌려주었다. 그리고 바닥에 칼집을 낸 종이컵을 뒤집어, 그 틈에 빼빼로를 꽂아 세워놓았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면 완성이었다.


요리를 할 때마다 얻는 공통적인 교훈. 바로 '침착함'이다. 보다 쉽게 말하면 '기다림'이라고 해야 하려나. 초콜릿이 굳기까지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조급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쩜, 이것도 못 기다리나.' 신중함을 추구하지만 성격은 급하다니. 참 나도 특이하다.




일차적으로 초콜릿 코팅과 스프레드, 크런치 뿌리기가 끝났을 때 잠시 고민했다. '한 가지 과정을 더 거칠 것인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짤주머니에 화이트 초콜릿 코인을 녹였다. 그리고 끝을 조그맣게 자른 다음, 일렬로 늘어놓은 빼빼로들 위에 지그재그로 뿌려주었다. 마치 갓 구운 타코야키 위에 가는 줄로 마요네즈 소스를 뿌리는 것처럼. 양 조절이 불안했지만, 다행히 모든 빼빼로를 화이트 초콜릿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앞서 코팅했던 밀크 초콜릿과 대비되는 화이트 초콜릿의 색깔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남은 것은 포장. 한 비닐당 한 개씩 조심스레 담은 다음 빵끈으로 끝을 묶어주었다. 뭔가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모양이 상하지 않도록, 무엇보다 부러지지 않도록 신경 쓰다 보니. 그렇게 만드는 것부터 포장까지 두 시간을 훌쩍 넘겼던 것 같다.


처음이라 엉망일지 몰라도, 직접 만들었으니 그 정성만은 꼭 상대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 상대를 기쁘게 해 주고, 또 그 반응을 기대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선물을 고민하고 준비하며, 만드는 과정은 참 행복하다.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얻는다. 때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나만 기뻐하는 선물이 되지 않도록. 때로 내가 먼저 지쳐서 마음을 담지 못한 선물이 되지 않도록. 내가 먼저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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