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 깔아놓았던 제 그늘을 주섬주섬 거두어
허리를 펴는 늙은 느티나무 무릎이 시다
목이 짧은 해가 두꺼운 외투 깃을 세우고
얇게 인화된 그림자를 둘둘 말아들고
잰걸음으로 산등성을 넘어갔다
종잇장처럼 푸석하게 마른
바람의 입술에 빈 젖을 물리는 억새
한때 말구유같이 아늑했던 초록지붕들 위를
맨발로 걷던 구름의 전령들은 다 떠나고
채색한 머리 위로 이모작을 하는 하늘
깊은 우물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소리의 깃
가벼운 현기증
ㅡ반달 표류기
<2023.현대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