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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Sep 01. 2019

초보자의 파리 자유여행

12시간 비행, 7박 8일 낯선 파리 여행을 떠난 날


꿈만 같은 일이 발생했다. 55년 내 인생에 가장 먼 길을 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고 있다. 고도는 1만 미터 이상, 시속 920km, 바깥 기온이 영하 51도다. 기내 모니터상으로 러시아 항공을 지나는 중으로, 이륙한 지 5시간째 비행 중이다.

파리는 12시간을 비행해야 한다. 기내는 견딜만한 동체 소음을 가득 안은 채 날아간다. 간혹 흔들림만이 상공에 떠 있음을 알릴 뿐이다. 270명을 태운 육중한 비행기가 중력을 뒤로 내뿜으며 무한 속도로 내달린다. 많은 사람들은 12시간 동안 한 배가 아닌 비행기 동지가 됐다.

승객들은 비좁은 좌석에 다닥다닥 붙어서 12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나갈 곳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복도를 걷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가봐야 화장실 정도다. 의자에 앉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고도 상공의 기류는 안전벨트를 불러매게 하기 일쑤다.

인류의 역사는 비행기 속도만큼이나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 많은 낯선 사람들이 1만 미터 갇힌 상공에서 12시간을 아무 일 없이 지낸다. 밥을 먹은 후 치약 묻힌 칫솔을 들고 화장실 앞에 줄지어 섰다. 여름휴가 해변가의 화장실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이런 질서는 인류만이 가능한 일이다. 만약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 270마리가 비행기 안에 탑승했다고 상상해보라. 서로 영토분쟁을 벌여 착륙했을 땐 한 마리도 남지 못하고 죽어있을 것이다. 인류의 진화는 이토록 오묘한 것이다.

비행기는 인류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자 가장 과학적인 물체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가 가장 최고조의 인상을 받는다. 인간이 중력을 거부한 채 새처럼 날 수 있다니, 얼마나 위대한 사건인가. 착륙하는 것도 신비롭다. 그 육중한 물체가 사뿐히 길을 찾아 앉을 수 있다니.

나는 해외여행을 많이 하지 못했다. 신혼여행 때 말레이시아, 재작년에 태국 방콕에 간 게 전부다. 이번 파리는 최고 긴 여정이다. 자유여행은 재작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오로지 ‘자유’를 위해 모든 정보를 뒤져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방콕을 갈 때 지도를 처음 펴놓고 막막했던 기억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명명됐다. 자유는 수고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준비가 없다면 자유롭지 못하다. 언어, 지리, 문화를 모른다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여행 한번 감으로써 자유의 소중함을 배우는 이유다.

파리 비행기표 티켓은 1년 전에 끊었다. 아내와 나는 꼭 가리라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파리 지도를 펼쳤다. 영어는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독해가 가능하지만, 불어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태국 방콕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구부터 20구까지 파리의 영역별 지리도 나중에야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을 기준으로 정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지리 탐색은 늘 나의 몫이다. 아내는 내가 일정 초안을 내면 세밀하게 검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8월 31일 파리행 아시아나 기내에서 나온 점심과 저녁


지도가 눈에 들어오면서 일정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비교적 짧은 7박 8일을 짜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유경험자의 조언이 때로는 여행자를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한번 가기 힘든 여행 최대한 보고 오라는 주문과, 너무 일정이 빡빡하면 힘드니 천천히 충분히 느끼고 오라는 두 조언이 상충한다.

결국 우리 계획도 몇 번이나 수정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일정을 최대한 부여해 짰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광보다는 ‘느낌’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독서에도 다작이 있지만, 정독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결국 최종 일정에는 중요도 순으로 계획들을 부분 축소 조정했다.

이번 파리 여행은 뜻밖의 도움도 따랐다. 파리에 음악 유학 중인 인스타그램 친구가 현지 정보를 많이 제공해줬다. 그녀의 아빠는 나와 나이가 같다. 그녀는 내가 매일 아침 올리는 집밥을 보면서 고국의 엄마 아빠를 생각한다고 했다.

인스타그램도 3년을 넘기면서 많은 팔로워와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친구들은 세계 각지에 뻗어있다. 물론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신뢰를 확인하긴 힘들지만, 현지 정보를 교류하는 데는 충분한 배경이 된다. 매일 집밥을 올리는 꾸준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해외여행은 붐을 넘어 대세다. 오대양 육대주 못 갈 곳이 없다. 인류는 전 지구적인 소통을 통해 더욱 진화한다. 언어, 문화가 달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자유와 의지는 인류의 공통적 속성으로 진화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잘 알기에 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됐음이다.




처음 가 보는 파리는 대체 어떤 도시일까. 내 상상의 기류는 쏜살같은 기체에 붙었다 떨어져 나가기를 거듭 반복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파리는 기대와 설렘으로 나를 상공으로 더욱 밀어낸다.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서 처리할 일이 태산인데, 자유와 낭만을 먼저 떠올리는 나는 역시 초보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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