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자유여행 초보자가 흔히 겪는 곤란함과 공감능력
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와 조우하는 낯선 경험이다. 일단 글보다는 말과 행동이 더 필요한 상황이 지배한다. 영어를 쓰지 않는 프랑스 파리는 곤혹스럽게 나를 궁지에 몰기 일쑤다.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서 출구 찾는 것조차 간단치 않았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캐리어를 끌고 르-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편하지만 비싼 픽업 대신 공항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1, 2, 3, 4 네 개의 노선 중 2번 버스였는데, 에펠탑까지 주요 시내를 관통하는 버스다. 에펠에서 내려 구글맵을 따라 캐리어를 끌고 비르하켐 다리를 건너 파시 역 근처 숙소 번지수에 다다랐다.
하지만 민박집 주소가 달라 결국 카톡으로 숙소를 어렵게 찾아냈다. 낯선 거리를 지나오면서 눈은 즐거웠지만, 마음은 방황 상태였다. 누구나 흔히 하는 평범한 일상들이 낯선 여행객에게는 방황과 고생을 자초하게 만든다.
파리는 세탁방이 활성화돼있다. 1인 개인문화가 일찍이 형성된 데다, 빨래라는 가사의 일이 많이 분담된 것처럼 보인다. 나와 아내도 빨랫감을 갖고 세탁방을 찾았다. 하지만 기계 작동법에서 콱 막혔다. 파리 사람들은 밥 먹는 것보다 더 쉽게 빨래를 돌린다. 어떤 청년은 책을 보면서 시간을 기다렸다.
난감한 우리 부부는 세탁이 막 끝나가는 파리 아주머니에게 손짓과 난처한 표정으로 도움을 청했다. 손에 든 유로 동전으로 기계 투입구에서 어떻게 할지를 보여주는 순간 sos 퍼포먼스였다. 이것이 통했는지 그녀는 자세하게 단계별 동작으로 가르쳐줬다.
세상은 힘든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어려워하면 도와주려는 속성이 내재된 것 같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했다. 갈등보다는 소통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표정과 손짓, 몸짓은 기본적인 인간의 문화적 속성인 셈이다.
그나마 빨래방 안의 풍경은 낫다.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를 찾았다. 무인 주문기에서 주문을 하고 카드 결제로 주문표를 받았다. 이곳은 대기번호 창이 따로 없어, 주문자는 주문표와 물품을 직원과 확인하고 순차적으로 찾아갔다.
20분이 지나도록 내가 주문한 물품이 나오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잖아도 어떻게 내 물품을 확인해야 할지 걱정의 눈으로, 직원의 동작과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해 직원에게 다가가 손짓, 표정으로 내 물품이 나오지 않았음을 알렸다.
문제는 카드 결제로 나온 주문표가 제대로 승인이 안 돼 나온 오류의 영수증이었다. 프랑스어를 알지 못했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당시 주문 기계 조작을 하면서 몇 번의 카드 조작을 했었던 터라 뭔가 착오가 생겼던 모양이다. 결국 현금으로 처리하고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파리의 지하철 이용도 난감했다. 교통카드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나비고를 발급받기 위해 파시 역 역무원 창구를 찾아갔다. 나와 아내 사진 두 장을 미리 챙겨 손에 들고 나비고 카드를 만들어달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직원은 창구 앞에 적힌 문구를 가리키며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문구를 스마트폰 번역기로 급히 검색했다. ‘서비스 불가’의 뜻이었다. 원인도 영문도 모른 채, 발급을 포기하고 1일권 승차권으로 구입해 전철 탑승구로 향했다. 이번에는 복잡한 노선과 호선이 프랑스어로 점철돼 있어 방향을 찾는 일이 난감했다.
결국 한국인의 ‘역동성’으로 재빨리 비교 검색하면서 방향을 잡아 나갔다. 오페라 역에서 내려 일정을 마치고 가는 길에 오페라 역 역무원으로부터 나비고를 비교적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파시 역은 작아 담당 업무 직원이 없어서 발급이 안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하철이 이제는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리는 초보 여행자인 내게 공감하는 법을 가르쳤다. 언어의 장벽은 여행에서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장벽은 다가가면 해결이 가능하다. 다가감이 쉽지 않기에 머뭇거렸다. 자존심과 어떤 우려심을 떨쳐 낼 때 가능하다. 인생은 도전이고 믿음이다. 인류가 문화는 달라도 존재를 위한 ‘공감’에는 탁월한 능력과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