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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pr 12. 2019

사람들은 왜 축구에 열광하나 [2]

핸드볼과 반대로 골이 적은 희소성의 극치감

골을 넣는 구기종목은 누구보다 빨리 달리거나 움직여야 목적을 달성한다. 문제는 공과 신체와의 접착성 관계이다. 농구의 경우 손으로 주고받으며 상대보다 빨리 달려야 한다. 드리블의 경우 농구는 공이 지면에 닿는 면적이 아주 짧다. 반면 축구는 아주 길다. 농구는 횟수 제한이 있지만 축구는 횟수나 시간의 길이에 구애받지 않는다. 즉 골을 넣기 위해 상대보다 빨리 이동함에 있어 공을 지닐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상당히 변화의 폭이 넓다. 그래서 축구는 기술과 묘미의 무한 복합 경기이다.

문제는 골의 양적인 측면이다. 농구나 하키 등 골 넣는 종목의 경우 축구보다 골수가 훨씬 많다. 골 장면이 스트레스 해소의 최고조인 점을 감안한다면 축구종목은 다소 의아하다. 골수가 적기 때문이다. 때로는 0-0의 게임도 많으며, 1-0, 1-1, 기껏해야 3-4점 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골이 적은 데도 더 극치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골 하나의 극대감이 타 종목 여러 골의 합보다 크던가, 골보다는 다른 무언가의 이유 때문이다.

우선 그 무언가의 이유라면 아마도 조직력과 짜임새일 것이다. 90분을 거의 쉼 없이 공을 놓치지 않는 경기의 특성에 있다. 즉 골을 넣기 위한 11명의 움직임이 일사분란하고 총체적으로 가동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골을 넣지 못하거나 실패했더라도 이에 대한 극치감이나 보상을 관중들에게 주게 된다. 0-0이 돼 아쉬움을 주더라도 무 골의 경기는 90분의 의미를 가름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골이 났을 때는 이런 모든 과정들이 하나의 응집된 에너지로 수렴된다.
 
그럼 타 종목과 달리 축구경기의 골이 왜 차별적인가. 이는 속도와 공의 크기 및 회전 그리고 사각 골대의 절묘함에 있다. 우선 축구는 골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조건을 들 수 있다. 일단 공이 크다. 또 골문이 넓음에도 골대 앞에서 문지기의 활동범위가 매우 크다.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골포스트의 두께는 두꺼워서 골인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즉 골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모두가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서 차별성은 출발한다.
 
비슷하지만 축구와 가장 반대되는 종목인 핸드볼 경기를 살펴보면 좀 더 비교가 쉬워진다. 물론 같은 스포츠 종목이면서 대중성에는 확실한 역사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결국 축구경기에 왜 매력이 숨어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핸드볼은 오늘날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협동 구기종목 중에서 가장 빠른 것 중의 하나다. 신체적인 힘, 근력, 스피드, 기술의 우아함, 협동의 조화, 의지의 개발 등은 축구와 하나도 다를 데 없다.

핸드볼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데에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경기장과 공, 그에 적절한 골문이 또한 작용한다. 농구도 그렇지만 핸드볼 역시 손과 다리가 따로 놀 수 있다. 공의 바운드와 드리블 역시 그렇다. 무엇보다 점수가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득점 하나 하나가 따로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빠르고 정확하고 점수가 많이 나오는 경기 자체가 꼭 대중성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 뒤집어 보면, 세련되지 않은 뭔가의 원시적이고 미완의 측면이 있는 축구가 대중성을 낳고 있다는 얘기이다. 인류는 손을 쓰면서 이성적으로 진화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차이나는 점은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축구는 이성과 진화를 상징하는 손을 쓰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손을 쓸 수 있다면 훨씬 예리하고 세련될 수 있을 텐데 축구는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축구는 과격하고, 원시적이고, 고되고, 정직하다.

축구에는 적과 아군을 갈라놓는 완충지대인 네트도 없고, 서브권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벤치에 앉아 껌을 씹으며 순서를 기다리지도 않고, 상대 실력이 약하다고 해서 접어주는 것도 없다. 야구의 경우 9회말에 이르기까지 무려 17번이나 공수를 교대하고 그 사이에 경기시간만큼이나 쉰다. 그러나 축구는 쉬지 않는다. 골키퍼가 공을 잡고 시간을 끌 경우 여지없이 옐로 카드를 받는다. 축구는 배구, 탁구, 테니스 등과 달리 상대 진영을 철저히 유린함으로써 승패를 결정짓는다. 한마디로 종횡무진, 상대 진영을 누비는 것이 관건이다.

축구 규정의 역사는 속도와의 전쟁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때로는 주저하며 승인하고 때로는 저돌적으로 추진했던 규정의 변천은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축구를 원시 시대의 감정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가'하는 노력이었다. 축구는 고도 산업화 시대에 저 먼 원시시대의 초원을 향해 거꾸로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 같다. 온갖 사회적 제도와 규율을 이탈하여 드넓은 그라운드에서 펄펄 뛰는 축구 때문에 인류는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축구는 또 어느 경기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경기다. 공이 둥글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상하기 어렵고, 오랫동안 퇴화된 발도 신체 중에서 매우 무딘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엄밀한 규칙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고, 발도 매우 정교하게 놀려야만 공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 이처럼 공의 불규칙한 운동과 발의 규칙적인 기교가 엮어져서 멋진 골인을 연출하는 것은 짜릿한 마술과 같다.

어떤 종목보다 축구에서의 골은 모든 요인의 블랙홀이다. 골은 승부에 영향을 주는 것 이전에 조직의 완결점이자 목표다. 관중들의 탄성과 응집을 이끌어내는 마력인 것이다. 골을 만들기 위한 조직의 일체적 노력과 그 과정이 바로 축구 매력의 중요한 지점이다. 마라도나의 마술 같은 드리블이 더욱 인정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선수들의 놀라운 몸의 균형과 조화 같은 것도 바로 골을 위한 과정에 있어서 기하학적 비례의 아름다움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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