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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pr 10. 2019

뒤로 보아야 하는 것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대의 자화상

우리는 앞과 뒤를 분간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늘 앞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 가사와 업무도 앞의 문제이고, 대화도 앞의 행위이다. 늘 정면의 시선을 응시했고, 선발되는 꿈에 부풀었다. 도전이라는 개념도 앞에 세워놓은 의미다. 앞은 자긍심이었고, 뒤는 자괴감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셈이다.


최근 ‘뒤’가 캥기는 분위기다. ‘뒤를 한번 돌아보자’는 성찰의 얘기가 자주 들려온다. 한국사회에서 앞의 것들은 너무 빨리 다가왔다. 많은 것들이 앞에서 뒤로 사라졌다. 앞에서는 환호가 들끓었고, 뒤에서는 원성과 갈등이 남겨졌다. 여성들은 앞 다투어 앞을 꾸미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쇼윈도 앞에는 마네킹이 유혹하고, 너도 나도 앞의 것을 취하기 위해 줄을 선다.


세상에는 앞과 뒤가 있다. 문명은 앞이 치달아온 결과다. 뒤는 대개 미완의 세계다. 뒤치다꺼리는 소외의 이면이다. 항상 주연이 초점이다. 무대 앞은 조명이고 뒤는 어둠이다. 지름길도 앞의 문제다. 뒤돌아가는 삶의 회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뉴스도 앞서가는 것들이다. 뉴스를 위해서라면 무덤까지도 가는 것이 기자다. 유행과 트렌드는 가장 앞서 있는 흐름이다. 뒤를 캐내고 구린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는 비교적 앞에 있는 사람들이다. 일과 노동도 앞에 있는 것들이다. 뒤는 휴식이고 안락이다. 우리는 어쩌면 후퇴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왔다. 바둑기사 이창호가 세계 석권을 한 것도 뒤의 영역이다.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는, 뒤로부터의 확실한 수읽기가 그랬다. 건넘은 앞의 일이고, 건너지 않음은 뒤의 문제다. 뒤로부터의 발상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앞길이 구만리이지만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앞길이 멀고 창창한데도 문제는 뒤에 있다는 얘기다. 평준화, 평등, 보편화, 대중화는 앞이 뒤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비정규직, 이주민, 노숙자, 독거노인 등은 뒤에 있는 사람들이다. 제도란 다름 아닌 뒤에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뒤는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얘기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것도 같은 이치다. 뒤를 볼 수 없음은 함께 해야 함이다. 함께 함은 앞의 것들을 제고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멋있지만 생각해 볼 일이다. 뒤로 가야 할 것은 아니지만 뒤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돼야 한다.




혁신이란 앞을 개척하는 것보다 어쩌면 뒤를 풍부하게 하는 조치다. 모방, 서행, 동행, 배우는 것, 독서, 고향, 향수, 인간미, 아날로그, 멋 등 뒤의 것들이 앞서야 한다. 누군가의 뒤에 있어서 서러운 사람들, 2등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 부지런히 앞을 정하는 기준들이 바로잡혀야 한다.


경쟁은 앞뒤를 가르는 일이다. 효율도 앞을 위한 개념이다. 다투는 일, 갈등과 싸움은 앞에 서기 위한 행위다. 앞과 뒤의 사물들의 간극과 역사적 해명에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앞에 나설 것을 강요하는 사회는 ‘공정사회’가 아니다. 공정은 뒤를 풍부하게 하는 조건이다. 우리 사회가 가장 앞서 있는 것은 자살률이다. 죽음이 앞에 있는 불행한 사회인 것이다.


허그(뒤에서 안는 스킨십)가 사랑의 공감(감성)을 풍부히 일으키는 행위로 주목받고 있다. 전면 포옹이 많지만 이혼율이 높고 헤어짐이 많은 오늘이다. 대면하고, 조우하는 일도 바로 앞이라 벅차다. 비켜가고, 돌아가는 여유, 신중, 조망, 고민 등 더불어 사는 사회가 ‘뒤’의 의미다.


앞은 뒤의 반영이다. 앞이 있는 것은 뒤라는 배경과 전제 때문이다. 수많은 조건, 배후 등 뒤의 것들이 만들어준 것이 앞면이다. 그럼에도 앞에 놓여있는 것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에겐 앞에 놓여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뒤가 풍부한 사회, 적어도 앞뒤가 절반인 사회를 꿈꾼다. 앞이 우리를 너무 가로막고 있다.


단 1분이라도 뒤를 돌아다볼 수 있는 하루가 그립다. 아침 정동 출근길 사람들 뒷모습이 새롭다. 여전히 그들이 가는 길이 바쁘고, 앞을 재촉하는 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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