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논문

아내를 위한 희대의 고백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어요.
그것도 논문이에요.
대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책 한권 제대로 읽은 적도 없어요.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 온갖 평가를 다해왔어요.
주제넘은 일이란 걸 최근에야 알았어요.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해요.
논문도 주제넘은 일일지 몰라요.
그래도 자신감이 생긴 건 다행이겠죠.
 
제가 준비한 논문의 형식은 특별해요.
내용도 파격이 될 거에요.
예감도 좋아요.
누구보다 당신이 좋아할 거라 믿어요.
논문의 주제는 바로 '당신'이거든요.
 
말할 때 목소리 톤을 왜 높이는지
잠잘 때 왜 이불을 둘둘 말고 있는지
애가 없는 좌절감을 어떻게 견디는지
제가 '착한남자'라고 말할 때 왜 쓴웃음을 짓는지
화장하는 법, 바지만 입는 습관, 쇼핑홀릭 등.

무엇보다 남편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이외에도 소재는 수도 없이 많아요.
아마도 가장 많은 근거를 갖는 희대의 논문이 될 거에요
가장 로맨틱하고,
가장 인문적이고,
가장 감성적인 논문이란 걸 아시겠죠.
 
이 논문을 위해
당신을 더 관찰할 거예요.
당신과 더 많은 대화도 나눌 거고
당신의 버릇, 무의식적 행동까지도 살필 거예요.
에로틱한 당신의 반응을 체크하는 것,
이것이 가장 문제로군요.
그땐 제 자신이 먼저 이성을 잃어버릴 게 뻔하니까요.
그 대목은 다행히도 비밀에 부칠게요.
 
논문이 완성되면
당신에게 가장 먼저 줄 거예요.
표지 뒷장엔 주저없이 사인할게요.
정말 주저없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