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깊이, 장기의 치열함, 오목의 오묘함
시간에 쫓기는 선수들. 초를 다투는 게임의 세계. 스포츠 기록경기라고 우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기록경기가 아니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쯤 될까. 게임은 승부가 있기에 존재한다. 승자가 있기에 패자가 있는 법이다. 승패는 모름지기 병가지상사라 했다. 하지만 패배의 쓰라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쉬움과 한 수의 미련이 남는다.
브레인 경기엔 세 종목이 있다. 바둑, 장기, 오목이다. 나름 어릴 때부터 바둑을 좋아해서 두루 알게 됐다. 바둑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기다. 수준급이 되려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장기와 오목은 이에 비하면 좀 낫다. 종목마다 규칙이 달라 전략과 전술의 선택이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다.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생의 무료함에 게임만한 것이 또 있을까. 스포츠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승부가 있기에 대중들은 열광하고 매료된다. 승부가 단 순간에 내려지는 게임(승부)의 세계 때문이다. 뭔가 가부간에 결론이 서야 묘미가 있는 법이다. 각종 선거도 그렇고 드라마의 결말과 영화 속 주인공의 말로를 보고 싶어 하는 갈증도 그렇다.
바둑은 포위해서 돌을 잡고 영역의 경계로 집을 둘러싸 집계산으로 승부를 가린다. 장기는 있는 위치에서 기준이 잡혀 있는 가운데 기물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의 적을 포획하는 게임이다. 상대의 목표물은 뚜렷하다. 이에 반해 오목은 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5의 행렬을 향해 나아간다.
오목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돌을 들어내는 것도 없고, 죽이고 잡히는 것도 없다. 오직 한 길, 한 목표를 향해 자신을 끊임없이 분신의 다리를 놓을 뿐이다. 적을 생포할 필요도 없고, 가두어 따낼 일도 없다. 그저 경계 없는 사선 위에서 동지를 일렬로 세워내면 되는 것이다.
바둑과 장기와 오목의 고유한 맛은 이로부터 나온다. 바둑은 끊임없이 돌들의 연결과 차단 속에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고 충돌하며 타협해 나간다. 장기는 이미 태어나 있는 기물들의 역할과 위치 속에서 상대와 부단한 전투를 벌이며 생사를 고비로 목표물에 다가간다. 요컨대 바둑과 장기에는 생사가 있다. 그래서 치열하다.
난타전이 일어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생사가 있기에 승부의 호흡도 가파르다. 바둑과 오목은 한 개의 돌들이 각기 평등하다. 이 돌들이 서로 부대끼며 어떤 조건 속에서만 균형이 깨질 뿐이다. 반면 장기는 이미 기물들이 평등하지 않다. 가치와 점수가 매겨져 있고 생사 여부에 따라 승부로 직결된다.
바둑과 장기, 오목이 갈래는 다르지만 인생에 주는 의미가 각별하고 고유하다. 바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다시 무로 돌아간다. 장기는 유에서 시작해서 무로 갔다가 다시 유로 돌아온다. 오목은 바둑처럼 무-유-무를 거치지만 5목의 형태를 향해 끊임없이 치닫는 것이 남다르다.
장기는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고 바둑은 인생의 과정을 보여주며 오목은 인생의 방법을 알려준다. 태어나 있는 조건 속에서, 끊임없는 영역을 구축해가며,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참된 친구 5명을 얻어나가는 과정. 이것이 장기, 바둑, 오목의 이치일 것 같다. 세 종목이 조화롭게 빛을 발하는 이유다.
바둑만 갖고는 출신(역사)을 모르고, 장기만 갖고는 영역의 깊이를 모르며, 오목만 갖고는 생사를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타협하고) 있으며, 어떤 관계로 자신을 대형 속에 소속시켜야 하는지를 바둑, 장기, 오목이 가르쳐주고 있는 셈이다.
바둑의 깊이, 장기의 치열함, 오목의 오묘함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깊이와 치열함과 오묘함의 이치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필요할 법하다.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바둑은 장기와 오목의 수를 약하게 보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바둑의 실력자들은 장기와 오목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브레인 3종 경기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해준다. 이제 시대는 다양성의 가치로 접근되고 있다. 많은 참여와 각종 다양함이 숨 쉬는 사회가 아름다운 법이다. 브레인(brain)은 이제 한 종목의 깊이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종목의 넓이로 적응 진화해 갈 것이다. 그 대열에 가까이 다가가 있음은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