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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Jun 19. 2019

자신과의 백일장, 브런치 100일

삶의 고단함 속에 희망의 문턱을 넘나든 소통의 여정

마흔 살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삶의 고비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다.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척박한 노동현장은 삶을 고단하게 했다. 시간들이 노동과 함께 흘러갔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습은 소박했지만 힘겨웠다. 글은 외로움과 함께 어느덧 친구가 됐다.


각자의 삶이 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 경험들은 모두 소중하다. 연관 있는 현상들을 정리함이 필요했다. 단순히 팩트로써 만이 아니다. 사회 변화의 현상들은 기사로 남는다. 몇 안 되는 작가로부터 일부의 경험만이 글로 남는다. 상상력을 동원해도 역시 일부의 것들이다. 현실에서 부대끼는 많은 경험들이 남겨지길 원했다. 이제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함도 느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저마다 다르다. 대립적으로 혹은 상생적으로 보기도 한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글쓰기다. 지나간 과정들이 소중하다면 그것은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현실을 조정하는 미래를 위한 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정리가 그래서 필요하다. 그 정리를 누군가에 맡길 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각자에게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글의 위력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꼭 100일째다. 지난 3월 12일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백일은 시작이자 전형의 의미다. 어떤 모양이 갖춰지는 시기다. 갓난아기, 연인관계, 신병훈련, 수능시험 대비 등 백일이란 그 과정의 전형이 갖춰지고 체계를 잡는 기초의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 블로그는 내가 못한 영역이었다. 블로그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 sns를 두루 거쳤지만 블로그는 손도 못 댔다. 그래도 글을 쓴다고 하면 블로그는 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블로그는 유튜브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세였다. 검색의 최대 시장이었다. 블로그가 부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뒤늦은 후회는 늘 애처롭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브런치였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그즈음 책을 낼 요량으로 써둔 글들이 마침 유효했다. 요리하는 남자로서 경험담을 써놓은 글들이다. 처가살이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처가에서 처부모를 모시면서 요리까지 담당했던 일련의 스토리였다. 책 제목을 ‘출근하는 남자의 집밥일기’로 미리 정해두었다. 그리고 신청서에 써 내려갔다. 2년 이상을 쌓아온 인스타그램 피드 주소도 올렸다. 5일 만에 답이 왔다. ‘합격’


3월 12일 밤 첫 글 ‘출근하는 남자의 집밥일기​’​​​​를 올렸다. 내려고 했던 책의 프롤로그였다. 깜짝 놀랐다.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1천, 2천, 5천, 1만•••3만, 5만 조회수가 하루 동안 계속 올라갔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누가 보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브런치 메인에 걸려있기는 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이틀 사이에 8만 뷰를 훌쩍 넘었다.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4월 6일 올린 글은 더 ‘대박’이었다. ‘내일은 뭘 먹을까 식단 짜는 방법’​​​이 이틀 만에 10만 조회수를 훌쩍 넘겨버렸다.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이었다. 멘털의 지각 변동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식단’은 늘 화두였다. ‘오늘은 뭘 먹고, 내일은 뭘 준비할까’ 하는 댓글이 늘 올라왔다.


그러한 경험들이 이런 날들을 만들었던 것 같다. 요리는 내게만 관심사가 아니었다. 누구나 고민하면서도 넘겨버리는 일이었다. 건강은 먹는 것과 늘 연결됐고, 그 파생들은 나의 경험으로 돌아왔다. 브런치는 이런 내 경험담을 주저 없이 연결시켜 주었다. 브런치가 없었다면 독백으로 끝났을 얘기들이다.


브런치는 내게 백일장이었다. 매번 글의 발행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내 생각이 오만하지 않은지, 내가 현실과 동떨어져 살고 있지 않은지, 미천한 내 경험이 부풀려 있지 않은 지 등이 늘 시험의 관건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 다운 모습일지를 늘 고민했던 무대였다.
 
브런치는 그리움이었다.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울 때면 늘 글이라는 존재와 마주쳤다.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통로가 필요했다. 굳이 어떤 작품이 필요한가는 중요치 않았다. 우선 지금의 나를 쓰는 것이었고, 이는 곧 누군가를 찾아 나선 길이기도 했다.

브런치는 기다림이었다. 이번엔 누굴 만나게 될지, 누군가와 대면하게 될지를 가늠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독자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넘실대는 장이었다. 독자와의 만남은 알림으로 연결됐다. 그 많은 뜻밖의 조회수들은 나를 더욱 기다림이라는 에너지로 쌓아놓고 있었다.




이제 소박하게나마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게 된 것은 행운이다. 새로운 경험이다. 어떤 작가가 반드시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한 번 더 정리하는 계기는 늘 필요했던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써나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 미약하게나마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기쁨 그 자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떨 땐 행복하다. 그럴 때마다 인과관계를 해석해 보는 것도 주제넘은 행복이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이번 기회를 빌려 더욱 깊은 글을 쓰고 싶다. 더욱 관찰하는 글을 쓰고 싶다. 쓰는 것도 문제지만 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것이 중요하듯이. 보잘것없는 글을 싣게 해 준 브런치 측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더 없는 인생의 행운이자 기회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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