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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특별 Apr 20. 2022

[회상]개고기 맛봤다.

P시의 전통놀이

어렸을 때 P시 우리 동네에는 '개고기 맛봤다' 라는 놀이가 있었다. 재수때부터 서울 생활을 했는데, 약 27여년동안 친구들과 얘기를 해본 결과 서울은 물론, 지방 출신 중에서도 개고기 맛봤다를 아는 놈들은 없었다. 어쨌든 나는 P시 부심을 가지고 아래와 같이 기억을 더듬어 개고기 맛봤다를 그림판으로 재현해보았다. 


<P시의 무형문화재급 전통놀이 개고기 맛봤다>

아래는 내가 기억나는 부분만 적어본 것인데, 국민학교 1~3학년때 하던 놀이라 당연히 틀리거나 모자라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 필요인원 : 4명 이상이면 다 됨

- 놀이방법 

1) 다같이 모여 땅바닥에 위와 같이 발로 개고기 맛봤다 판을 그린다. 인원에 따라 크기는 커질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2) 가위바위보나 탐탐비(탄탄비라고도 했던 것 같다. 암튼 이 말도 P시에서만 쓰이는 것 같다)로 공격과 수비를 나눈다. 

3) 공격수들이 "개고기"라고 외치고 수비수들이 "맛봤다"를 외치면 P시의 전통놀이가 시작된다. 

4) 공격 : 공격하는 팀은 공격수 중의 한 명이 상기 그림판의 빨간색 부분에 발을 디디면 이긴다.(또는 상대팀을 다 죽이면 이긴다) 공격수들은 thumbs-up 처럼 생긴 곳의 빝에 부분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대롱같이 긴 복도를 지나(이때 수비수들이 밀어서 복도 밖으로 밀려나거나 수비지역으로 끌어 당겨지면 out이다) 맨 위에 귀처럼 뽈록 솟아나온 곳까지 살아서 올라오면. 그곳에서 잠깐 쉬다가 그때부터 깨금발로 제일 하단 중앙의 수비지역 진입로로 도착한다. 

*수비수를 밀어내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밟으면 깨금발 존으로 나와도 두발로 다닐 수 있는 advantage가 주어진다. (이때 공격수는 사실상 무적 상태라, 수비수가 깨금발 존에 나와있었다면 재빨리 수비지역으로 다시 돌아가는게 좋다)

5) 수비 : 수비하는 팀은 빨간색 부분을 끝까지 사수하면서 공격수를 다 죽이면 이긴다. 수비수라고 해서 공격을 못하지는 않는다. 좁은 빨대같은 길을 지나쳐야하는 공격수들을 밀거나 잡아당겨서 죽일 수 있고, 어그레시브하게 깨금발 존에 나가서 진입로로 들어오려는 공격수들을 넘어뜨려 죽일 수 있다. (깨금발 존에서는 수비수도 깨금발로 다녀야 함) 역으로 공격수가 수비수를 잡아당겨서 수비지역을 벗어나거나 깨금발 존에서 넘어지면 죽는다. 

*파란색 부분을 수비수 중 한명이 한 발이라도 디디고 있을 경우, 공격수가 파란색 부분을 밟아봤자 advangtaege가 주어지지 않는다. 


- 회고 & lesson learned 

1) 룰이 단순한 것 같지만 의외로 공수간 밸런싱이 잘 맞는다. 적재적소에 필요 인원을 투입하는 등 팀웍이 매우 중요하며 순간순간 어느 곳을 공략하고 누굴 도와서 상대편을 죽일지 전략/전술적인 판단이 필요하므로 IQ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2) 깨금발 존에서의 싸움이 매우 치열하고 깨금발로 뛰다보니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발달한다. 또한 서로 끌어당기고 밀다보니 아귀힘과 이두/삼두박근 대흉근등이 발달해서 성장기 소년에게 필수 놀이였다. 

3) "개고기"와 "맛봤다"를 번갈아 외칠 때는 사뭇 war cry를 내지르는 것 같은 웅장함과 결기가 생긴다. 자신감은 물로 당시 유행했던 웅변 등에 좋았다. 

4) 여러 나이대들이 같이 플레이할 수 있었고, 몸이 약한 아이들은 깍두기로 지정해서 같이 놀았으므로 동네 화합의 장이었다. 또한 다른 동네로의 원정도 가능했기에 경쟁심을 고취시켰다.

5) 어떤 준비물도, 놀이 이후의 정리도 필요하지 않았어서 빠르게 놀고 빠르게 흩어질 수 있었다. 옛날 징기스칸이 했음직한 놀이이다. 


40중반이 된 지금 돌이켜봐도, 개고기 맛봤다는 당시 소년들의 지덕체를 모두 겸비하게 해주는 완벽한 놀이였던 것 같다. 다소 과장되게 썼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다. 당시 동네 친구들과 모여 "개고기"와 "맛봤다"를 사자후처럼 외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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