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시의 전통놀이
어렸을 때 P시 우리 동네에는 '개고기 맛봤다' 라는 놀이가 있었다. 재수때부터 서울 생활을 했는데, 약 27여년동안 친구들과 얘기를 해본 결과 서울은 물론, 지방 출신 중에서도 개고기 맛봤다를 아는 놈들은 없었다. 어쨌든 나는 P시 부심을 가지고 아래와 같이 기억을 더듬어 개고기 맛봤다를 그림판으로 재현해보았다.
아래는 내가 기억나는 부분만 적어본 것인데, 국민학교 1~3학년때 하던 놀이라 당연히 틀리거나 모자라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 필요인원 : 4명 이상이면 다 됨
- 놀이방법
1) 다같이 모여 땅바닥에 위와 같이 발로 개고기 맛봤다 판을 그린다. 인원에 따라 크기는 커질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2) 가위바위보나 탐탐비(탄탄비라고도 했던 것 같다. 암튼 이 말도 P시에서만 쓰이는 것 같다)로 공격과 수비를 나눈다.
3) 공격수들이 "개고기"라고 외치고 수비수들이 "맛봤다"를 외치면 P시의 전통놀이가 시작된다.
4) 공격 : 공격하는 팀은 공격수 중의 한 명이 상기 그림판의 빨간색 부분에 발을 디디면 이긴다.(또는 상대팀을 다 죽이면 이긴다) 공격수들은 thumbs-up 처럼 생긴 곳의 빝에 부분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대롱같이 긴 복도를 지나(이때 수비수들이 밀어서 복도 밖으로 밀려나거나 수비지역으로 끌어 당겨지면 out이다) 맨 위에 귀처럼 뽈록 솟아나온 곳까지 살아서 올라오면. 그곳에서 잠깐 쉬다가 그때부터 깨금발로 제일 하단 중앙의 수비지역 진입로로 도착한다.
*수비수를 밀어내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밟으면 깨금발 존으로 나와도 두발로 다닐 수 있는 advantage가 주어진다. (이때 공격수는 사실상 무적 상태라, 수비수가 깨금발 존에 나와있었다면 재빨리 수비지역으로 다시 돌아가는게 좋다)
5) 수비 : 수비하는 팀은 빨간색 부분을 끝까지 사수하면서 공격수를 다 죽이면 이긴다. 수비수라고 해서 공격을 못하지는 않는다. 좁은 빨대같은 길을 지나쳐야하는 공격수들을 밀거나 잡아당겨서 죽일 수 있고, 어그레시브하게 깨금발 존에 나가서 진입로로 들어오려는 공격수들을 넘어뜨려 죽일 수 있다. (깨금발 존에서는 수비수도 깨금발로 다녀야 함) 역으로 공격수가 수비수를 잡아당겨서 수비지역을 벗어나거나 깨금발 존에서 넘어지면 죽는다.
*파란색 부분을 수비수 중 한명이 한 발이라도 디디고 있을 경우, 공격수가 파란색 부분을 밟아봤자 advangtaege가 주어지지 않는다.
- 회고 & lesson learned
1) 룰이 단순한 것 같지만 의외로 공수간 밸런싱이 잘 맞는다. 적재적소에 필요 인원을 투입하는 등 팀웍이 매우 중요하며 순간순간 어느 곳을 공략하고 누굴 도와서 상대편을 죽일지 전략/전술적인 판단이 필요하므로 IQ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2) 깨금발 존에서의 싸움이 매우 치열하고 깨금발로 뛰다보니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발달한다. 또한 서로 끌어당기고 밀다보니 아귀힘과 이두/삼두박근 대흉근등이 발달해서 성장기 소년에게 필수 놀이였다.
3) "개고기"와 "맛봤다"를 번갈아 외칠 때는 사뭇 war cry를 내지르는 것 같은 웅장함과 결기가 생긴다. 자신감은 물로 당시 유행했던 웅변 등에 좋았다.
4) 여러 나이대들이 같이 플레이할 수 있었고, 몸이 약한 아이들은 깍두기로 지정해서 같이 놀았으므로 동네 화합의 장이었다. 또한 다른 동네로의 원정도 가능했기에 경쟁심을 고취시켰다.
5) 어떤 준비물도, 놀이 이후의 정리도 필요하지 않았어서 빠르게 놀고 빠르게 흩어질 수 있었다. 옛날 징기스칸이 했음직한 놀이이다.
40중반이 된 지금 돌이켜봐도, 개고기 맛봤다는 당시 소년들의 지덕체를 모두 겸비하게 해주는 완벽한 놀이였던 것 같다. 다소 과장되게 썼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다. 당시 동네 친구들과 모여 "개고기"와 "맛봤다"를 사자후처럼 외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