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입마에 빠지다

초보 노가더 일기 7

by 푸레카

허허벌판에 하수구 배관을 묻는 공사를 한 달째 나가고 있던 어느 밤이었습니다. 선잠에서 눈을 뜰 찰나, 갑자기 왼쪽 허벅지가 무언가에 옥죄는 통증이 느껴지며 온몸이 제멋대로 굽었습니다. 몸을 가눌 수 없어서 바닥을 연신 두드리는 꼴이 꼭 니바(상대의 다리를 꺾는 격투기 기술)를 당해 항복을 선언하는 격투기 선수 모양이었지만 작은 원룸 안에는 시합 종료를 선언해 줄 심판은 없었습니다.


사실 며칠 째 겪는 일이라 그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술에 취한 형이 매일 밤 찾아와 뜬금없이 니바를 걸어오는 상상을 했을 정도니까요. 왼쪽 허벅지에 찾아오는 쥐가 처음에는 웃어넘길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배관 공사에서 잡부가 하는 일이란 게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습니다. 난데없이 근육통이라니 좀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고통이 커지면서 낭패감이 커졌습니다. 아무리 주물러도 쥐가 쉽게 풀리지 않는 데다가 온몸이 뒤틀리고 힘이 들어가다 보니 다른 곳에서도 쥐가 날 것 같은 징후가 느껴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어둡고 작은 원룸에 혼자 있다는 공포감.


그러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입니다. 그 밤, 왼쪽 허벅지를 열심히 주무르는데 돌연 오른쪽 허벅지에 마저 쥐가 났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때 하늘이, 아니 천장이 블랙홀로 바뀌는 것을 보았고 몸이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신줄을 잡을 새도 없었습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저 놈의 주리를 틀어라!”


잠시 조선시대에 갔던 저는 사또가 묻는 말에 고분고분 빠짐없이 이실직고했습니다. 하지만 야속한 사또는 도무지 제가 하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네 이노옴! 어서 수청을 들지 못할까?” “네??” 저는 주리가 풀리기도 전에 또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습니다.


“주화입마(走火入魔)로구나.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가다듬어 운기조식(運氣調息)하거라.”


백발이 성성한 사부님이 등 뒤에 앉아서 저의 운기조식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 몸이 움직이지도 않는데 가부좌를 틀다니요? 돌연 사부님의 등짝 스메싱이 날아와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이러다 등에도 쥐가 날 것 같고, 배에도 날 것 같았습니다.


두 팔로 바닥을 누르며 억지로 폈던 몸이 다시 스프링처럼 꼬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이렇게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데 웃음을 뱉으니 정말 배에 쥐가 날 것만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났던 순간의 데자뷔였던 것입니다. 이대로 정말 죽는 건가?


사부님의 등짝 스메싱이 다시 날아오고, 어두컴컴한 천장이 눈앞에 내려앉는 것이 보이자, 저는 니바를 거는 형의 불알을 주먹으로 냅다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명백한 반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형은커녕 누나도 동생도 없는 독자니까요. 제 불알이 다 아플 정도로 사정없이 마구마구 때렸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출근해야 하는데 자꾸 밤마다 찾아와서 이럴 거야!


이후로 서너 달은 허벅지에 든 멍이 가실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열심히 유튜브를 검색해 봤지만, 자다가 쥐가 나는 경우는 대체로 종아리이더군요. 허벅지의 경우는 거의 찾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형의 불알을 계속 마구마구 때려야 했습니다. (이 글을 빌어 그 형과 형수에게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그 후로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기도 하고 스스로 고안해서 써봤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잠들기 전 충분한 허벅지 마사지와 스트레칭이 가장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밤 찾아오던 형은 이제 소식이 뜸한 걸 보니 형수님과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자면 어느 밤 갑자기 찾아오곤 하지만요.


저처럼 종종 주화입마에 빠지시는 강호인들은 아무쪼록 참고하시길.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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