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잉글랜드 축구는 참 신기하다. 잉글랜드 국민들은 자국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정작 리그 수준과 월드컵/유로 성적은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떨어진다. 잉글랜드 축구를 표면적으로 분석하면 오히려 완벽에 가까워야 하는데 말이다: EPL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그고, 선수들이 끊임없이 발굴되며, 국민들이 대표팀에게 기대하는 성적은 항상 높다. 하지만 이는 오직 표면적인 상황을 표현할 뿐, 조금만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도 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점들을 분석하려고 한다. 물론 이 글이 잉글랜드 축구의 현주소를 완벽하게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견해를 곁들여 이 주제에 최대한 심층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1970년 대에 리누스 미헬스가 있었다면 2000년 후반부터는 펩 과르디올라가 있다. 펩과 미헬스가 가진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 둘은 "미치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축구 전술 역사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이 "미치광이" 카테고리에 부합하는 잉글랜드 출생 감독은 단 한 명뿐인데, 아스날의 전설이자 WM 포메이션을 유행시킨 허버트 채프먼이 그 주인공이다.
채프먼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아스날을 이끈 감독으로, 그가 선보인 파격적인 전술(WM 포메이션)은 축구 전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문제는 "미치광이"로 불릴만한 잉글랜드 출생 감독이 채프먼뿐이라는 것이다. 채프먼을 끝으로 자국 축구의 전술을 혁신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고 해도 무관하고, 이 때문에 독일과 스페인 등이 전술적 강국으로 거듭날 때 잉글랜드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눈에 띌만한 전술적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 독일은 위르겐 클롭과 윱 하인케스의 게겐 프레싱, 스페인은 펩 과르디올라의 점유율 축구, 네덜란드는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의 토탈 싸커로 전술적인 진보를 거뒀지만, 약 80년 동안 미치광이 감독을 배출하지 못한 잉글랜드에게는 자국 축구를 혁신시킬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물을 수 있다: 잉글랜드 출신 미치광이만이 잉글랜드 축구를 개혁시킬 수 있나?
질문에 대한 답은 "네"다. 생각해보자. 만약 한 전술이 한 국가가 지금까지 추구하고 구사했던 축구와 180도 다르다면, 그 전술은 혁신적인 전술이 아닌 말도 되지 않는 전술로 취급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펩 전에도 스페인의 축구는 기술적이었고, 클롭과 하인케스 전에도 독일의 축구는 강인하고 활동량을 중요시했다. 펩과 하인케스 등은 자국 축구를 "발전"시키고 "혁신"시킨 것이지, 지금까지 자신들의 국가들이 추구한 축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축구로 자국 축구를 뒤엎은 것이 아니다. 만약 잉글랜드 축구와는 전혀 다른 축구를 기반으로 하는 펩이 자신의 점유율 축구를 잉글랜드에 인식하려고 했다면 성공을 거두지 못 했을 것이다. 선 굵은 축구를 해왔던 잉글랜드 축구가 자신들의 전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수백 년 동안 해왔던 축구의 색깔이 전술 하나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잉글랜드 축구를 기반으로 하는 미치광이가 있어야 잉글랜드 축구를 개혁시킬 수 있다는 뜻인데, 어렸을 때부터 스페인 축구를 접해 기술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나 어렸을 때부터 독일 축구를 접해 체력과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잉글랜드 축구를 기반으로 하는 전술을 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짧게 말해 잉글랜드 축구를 개혁시키기 위해서는 잉글랜드 축구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잉글랜드 축구를 잘 이해하고 잉글랜드 축구를 기반으로 하는 미치광이가 필요한 것이다. 과연 그 인물이 잉글랜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있을까?
분데스리가, 라리가, 세리에 A 모두 자국 축구를 상징하는 큰 틀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크고 작은 변화를 통해 수 십 년 동안 발전해 왔다. 세리에 A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1970년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축구는 일명 빗장수비로 대변되는 수비적인 축구지만 토탈 싸커에게 완패한 경험을 밑거름 삼아 극단적 카테나치오를 포기하는 변화를 택했었고, 아리고 사키와 마르첼로 리피 등의 영향을 받아 수비적인 부분에서 수많은 전술적 변화와 혁신을 경험했다. 분데스리가, 라리가, 세리에 A 외에도 리그 수준이 비교적으로 떨어진다는 에레디비시에서도 끊임 없는 자국 축구의 발전을 볼 수 있다.
자국 리그에서 자국 축구가 전술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자국 대표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대표팀들은 자국 리그가 거친 변화들을 그대로 경험하고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에서 유기적이고 강도 높은 압박이 탄생했을 때 독일 대표팀도 비슷한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라리가에서 티키타카가 큰 혁신을 일으켰을 때 스페인 대표팀 또한 티키타카를 구사하기 시작했으며, 아약스가 토탈 싸커를 완성시키자 네덜란드 대표팀도 토탈 싸커를 기반으로 한 축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큰 틀에서 보면 자국을 상징하는 축구 스타일=자국 리그를 상징하는 축구=자국 대표팀을 상징하는 축구인 것이다. 자국 대표팀과 축구의 발전에 자국 리그의 역할이 큰 이유다.
위에 거론한 독일 대표팀(과 분데스리가), 스페인 대표팀(과 라리가), 네덜란드 대표팀(과 에레디비시), 이탈리아 대표팀(과 세리에 A)은 자국 리그가 큰 틀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한 덕에 세계에서 손 꼽히는 축구 강국들로 거듭났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다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 지난 80년 동안 선 굵고 직선적인 자국 축구를 발전시킨 전술이 없다시피 했다. 해외 명장들이 많았지만 모두 스페인,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축구를 기반으로 한 전술을 선보였고, 잉글랜드 전통 축구를 구사한 팀들도 "야, 공 앞으로 뻥 차고 앞만 보고 달려" 수준의 구식 잉글랜드 전술에 머무른 축구를 펼쳤다. 알렉스 퍼거슨 경의 4-4-2가 그나마 전통 잉글랜드 스타일에 잘 부합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전술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사실 이마저도 변화를 부를 만큼 전술적으로 진보된 전술이 아니었다.
잉글랜드 리그가 전술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증거로 잉글랜드 대표팀이 있다. 독일이나 스페인처럼 자국 리그에서 가져올 혁신적이면서도 정통과도 잘 맞는 전술이 없으니 항상 팀 컬러와 수준에 맞지도 않는 전술로 메이저 대회들을 치른 결과 매번 처참한 결과를 앉고 자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특히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강한 팀이라고 불렸던 2006 월드컵 대표팀도 8강에 오르는데 그친 것을 보면 그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펩과 무리뉴 등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축구와 전혀 다른 전술을 좋아하는 감독들이 EPL에 가는 것을 반가워하는 잉글랜드 팬들을 보고 굉장히 아이러니하다고 느낀다. 분명 자국 리그에 재미를 더하는 것은 맞지만 정작 잉글랜드 축구는 해외 감독들과 해외 전술들 속에서 죽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가 가장 활발하게 발전하고, 쓰이고, 조명 받아야 할 곳이 EPL인데 말이다. 하나를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잉글랜드 팬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 2에 출연한 한준희 해설위원은 잉글랜드의 지도자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참고한 자료에 따르면 UEFA 프로 라이선스를 보유한 잉글랜드 사람들의 수는 205명. 반면 독일과 스페인은 각각 1304명, 2353명이었다. 스페인과는 11배 이상이 차이 나고, 독일과도 6배 이상이 차이 난다.
지도자 인력 부족은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낳는다. 방송에서 한준희 위원이 말한 허약한 유소년 시스템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 그것. 지도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는 사람의 수가 적다는 것이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훗날 기량을 만개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독일을 보면 지도자 인력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녹슨 전차로 불리며 과거 명성에 떨어지는 성적을 받자 독일 축구 협회는 장기 플랜을 세우고 지도자 인력을 늘렸는데, 이로 인해 유소년 시스템이 발전하고 선수 육성의 수준이 올라가자 리그와 대표팀 또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현재 독일을 이끌고 있는 스타들 -- 메수트 외질, 토니 크루스, 마리오 괴체, 율리안 드락슬러,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 -- 모두 지도자 인력 증가를 통해 발전된 체계적인 독일 유스 시스템의 수혜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도자 인력이 부족한 잉글랜드에서 훌륭한 유스 시스템과 선수들을 찾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존 스톤스 같이 빌드업 능력이 어정쩡하고 멘탈도 유리 수준이며 수비력은 니클라스 벤트너보다 떨어지는 수비수를 영입하기 위해 EPL 클럽들이 50m 파운드 이상을 제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도자 인력 부족으로 인해 수준 있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친 현상을 보고 싶지 않다면 잉글랜드는 그 어떤 나라보다 지도자 육성에 더 힘써야 한다.
잉글랜드는 1) 자국 전술을 혁신시킬 수 있는 감독이 없고, 2) 자국 리그에서 자국 축구를 외면하며, 3) 부족한 지도자 인력으로 인해 유스 시스템과 선수들의 수준이 낮다. 한 마디로 말해 잉글랜드는 절대 축구 강국이 아니다. 잉글랜드가 축구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잉글랜드 국민들이 유일할 것이다: 잉글랜드 국민들은 대표팀이 메이저 대회에서 최소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길 원하며 독일과 스페인에 버금가는 실력을 바란다.
사실 높은 기대를 가지는 것까지는 괜찮다. 개인적으로 기대는 항상 높게 설정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잉글랜드 국민들과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대표팀을 정말 강하게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지도자 육성 및 유소년 시스템 발전에 눈에 띌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대표팀 감독으로는 그나마 괜찮은 잉글랜드 감독이라는 이유로 로이 호지슨 같은 동네 축구 감독도 내지 않을 조잡하면서도 기괴한 전술을 선보이는 감독을 신임하며, 자신들이 정말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정말 진보와 발전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잉글랜드는 자신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버리고 -- 솔직히 자신감과 자부심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자국 축구와 대표팀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독일을 보아라. 한때 녹슨 전차라고 불렸던 시절이 있었지만 독일 축구 협회가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이를 실현한 후부터는 다시 세계 축구를 주름잡는 축구 강국이 되었다. 물론 현재 잉글랜드가 정치적으로 많이 시끄럽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자국 축구와 대표팀을 발전시킬 수는 없겠지만, 독일처럼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시키면 독일과 스페인 부럽지 않은 축구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잉글랜드는 진보와 변화를 꺼려서 약국이었던 것이었지,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 그리고 가능성이 없어서 약국이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거론한 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점은 1) 자국 "미치광이"가 없고, 2) 리그 내에서 자국 축구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으며, 3) 지도자 인력이 부족하고, 4) 진보와 변화에 인색하다. 분명 작은 문제들이 아니지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잉글랜드라는 나라는 독일과 스페인처럼 좋은 환경,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 적극적인 지도자 양성, 진화하는 축구를 실현해낼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잉글랜드가 축구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키는 잉글랜드 국민들과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가지고 있다. 만약 지금처럼 진보와 진화 없이 자국 축구를 방치하면 "축구 종가"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에 계속 먹칠만 하는 성적을 받을 것이고, 한뜻을 모아 자국 축구 발전에 진정으로 힘쓴다면 현재 독일과 같은 성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글: 프리사이스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