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진화』, 리차드 프럼(Richard O. Prum)
온라인 MBTI 검사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잦아졌다. 예컨대 주말에 연속적으로 모임에 나간다고 하면 “역시 외향적인 E형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든가 혼자서 취미생활을 즐기면 내향적인 I형 인간이라고 단정 짓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얼마든지 진실과 다를 수 있다. I형 인간이라도 우연히 주말에 여러 모임에 나갈 수 있고 E형 인간이라도 여럿과 함께하는 취미와 혼자서 즐기는 취미를 구분하여 생활하고 있을 수 있다. 이렇듯 어떠한 행동을 MBTI라는 설명에만 기대어 파악한다면 실상과 전혀 다른 예측과 분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MBTI에만 기댄 설명은 사실 쉽게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론이 MBTI보다 과학적 근거가 훨씬 탄탄하고 오랜 기간 동안 검증을 거친 이론이라면 과연 쉽게 반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온갖 유명한 학자와 교수가 그 이론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면? 나름의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했다 해도 대세 이론을 뒤집기는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내용을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쉽게 반박을 허용하여 도태되고 말 것이다. 권위 있는 이론에 대한 도전은 상당한 용기와 성실함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주류 이론에 반기를 들고 진화 과정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조리 있게 서술한 책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윈이 제시한 2개의 대표적인 진화생물학 이론 중 주류를 형성하는 자연선택 이론에 맞서 또 다른 이론인 성 선택 이론의 독자성을 설명한 책이다. 자연선택 이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적자생존’에 따라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가진 종만이 살아남아 진화한다는 이론이며 성 선택 이론은 짝짓기 선호에 따라 진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을 말한다. ‘새 덕후’이자 조류학자인 저자 리차드 프럼(Richard O. Prum)은 자연선택 이론의 통찰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자연선택 이론이 모든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 선택 이론에 따라 조류의 외형 진화와 번식 행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선택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과 억지스럽게 주장하는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더 나아가 미적 진화의 통찰과 함의를 인간의 외모와 성행동에까지 적용하여 설명한다.
프럼이 뒤집고자 하는 자연선택 이론의 핵심 주장은 아름다움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연애 칼럼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정직한 신호 가설’이다. ‘정직한 신호 가설’은 성적 장식물과 과시 형질이 생존에 유리한 적응적 자질과 조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새의 경우 비행에 적절한 날개 길이나 꽁지 길이, 인간의 경우 대칭적인 얼굴과 출산에 유리한 넓은 골반(여성) 등이 건강, 활력 등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에 그러한 모습에서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직한 신호 가설에 대한 반례는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가 잘 아는 수컷 공작새의 꼬리이다. 자연선택 이론과 정직한 신호 가설은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아름답기만 한 공작새의 꼬리 장식물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자 자연선택을 최고의 진화 기제로 설명하는 적응주의 학파 학자들은 이를 ‘핸디캡의 원리’로 설명하고자 했다. 공작새의 꼬리와 같이 생존에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은 신호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지만 신호자가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자질이 우월하다는 것이다. 즉, 신호자가 엄청난 부담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자라는 주장이다.
얼핏 듣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을 프럼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프럼은 핸디캡이 우월한 자질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다리가 하나 없거나 눈이 하나 없이 생존하는 것도 충분히 우월한 자질을 보여주는 것인데 왜 장식물은 늘 아름답고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형태로 나타나는지 반문한다. 또, 인간의 경우에도 예컨대 청소년 시기 여드름은 호르몬 분비가 원활하다는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아무도 이를 성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한다. 결론적으로 프럼은 아름다움은 임의적이며 생존에 유리한 정보나 효용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항상 무작위적이라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이 순수하게 아무 정보를 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프럼에 따르면 생물의 진화는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이뤄지는 자연선택뿐만 아니라 우연적이고 예측이 어려운 성 선택의 진화 과정을 함께 거치며 암컷과 수컷은 서로의 성 선택에 의해 공진화(co-evolve)한다. 그는 이와 같은 논의를 ‘별의별 아름다움 가설’(Beauty happens hypothesis)이라고 명명하고 책 전체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예시와 근거를 제시한다.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제시하는 온갖 사례와 논리는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강하게 느낀 바는 그 어떠한 그럴듯한 설명에도 한 번쯤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 현상과 자연 현상을 분석하는 많은 학자들이 프럼의 말처럼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보다는 실증분석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검증하는 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럼은 “뭔가 복잡한 것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건너뛸 때” 지적 복잡성이 무너지고 획일적인 설명이 득세한다고 설명한다. 아무리 그럴듯하다 하여도 한 번쯤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내가 알 수 있는 진실의 크기는 쪼그라들고 만다. 『아름다움의 진화』를 읽으며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보단 오히려 프럼 교수의 용기와 성실함에 감동했다고 책을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