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번외-청소는 나의 힘(9)

짓눌린 무게, 고작 먼지의 무게(26.03.09. 월요일)

by Preni


청소를 하다 보니

매일 청소를 하다 보니

매일 아침 청소를 하다 보니


슬슬

머리를 들고 올라온다

귀차니즘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다는

그런 거창한 말을

핑계로

화장대 위 먼지를 모른 척했다.


그러다 보니

화장대나 책상 위는 잘 안 닦게 된다

뼈를 취하고 살을 내준다는,

뭐 그런 비슷한 거야

어쨌든 청소는 했잖니


아우 귀찮다

저기까지 닦으려면


그렇게 반복된 며칠

그러다 마주한 내 소중한 화장대

그 위

뽀얗게 쌓인 먼지들


부끄럽다


그러다 마주하게 된

근본적인 질문


‘간단하게 닦이는 걸 왜 그리 귀찮아했나?‘


먼지를 닦으려다 보니 화장대 위 물건들이 방해가 된다

하나씩 정리해 본다


오래된 상품권

한 번씩 쓰는 머리핀

착각해서 사버린, 뜯지도 않는 새 화장품

여행에 들고 다니는 손거울

잘 쓰지 않는 구루프들

연애시절 써놓은 여럿 달콤한 메모장들

저번 여행에서 받은 손크림


..

뭐야

이것들이 왜 이제까지 여기 있었어?

하나씩 치워본다

그리고

싸-악

한 방에 닦이는 먼지들


뭐야..

이렇게 간단하게 닦일 것을

왜 이제껏

그렇게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있었던 거지?


뽀얗게 쌓인 먼지에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쉽게 닦지 못했던 것은

간단한 한 번이 아니라

귀찮게 여러 번 손이 가게끔

촘촘하게 불규칙하게 어질러진 물건들이 한 몫했다.


그 물건들도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네


뭐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일인데

왜 이제껏 그렇게

꾸역꾸역

무겁게 마음을 안고 있었던 거야


그냥

지금 당장 필요할지

몇 번 생각했다면

몇 번 손길만 있었다면

금방 치워질 일이었는데

무거운 죄책감에 애초에 시달리지 않았도 되었었네


모두가 가벼이 여기는 먼지가

때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무게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때가

정리해야 할 적기이다.


먼지와 함께

내 마음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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