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인 내가 웃을 수 있는 이유
“응, 그래.
오늘 아부지 모임 가는 길에
너희가 저번에 선물한 겨울 외투 입었거든.
근데 비가 와서 빗물 묻을까 봐
집에 벗어놓고 못 입었다.
그래도 잘 입고 있거든, 고맙다.
거기는 비 많이 오니?
저녁밥 꼭 챙겨 먹어.”
아버님의 안부 인사에 잠이 깼다.
벌써 오후 다섯 시였다.
“딸, 내일 뭐 해?
집에 김치 좀 가져다줄게.
엄마가 아침 일찍 갈게.
…내일 여행 간다고?
아참, 내일이 그날이구나.
그럼 우리 집 김치 냉장고에
너희 줄 김치 보관해놔야겠다.
여행 잘 다녀와.”
엄마의 딸·사위 김치 근황 토크에
기지개를 켠다.
어느새 해는 지고, 저녁이다.
오늘만큼은 정말 웃기만 한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를 짓눌렀던
무력감과 압박감의 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정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실컷 웃고,
실컷 먹고,
실컷 즐겼다.
우리 신랑과는
저녁 이슬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산책을 했다.
우리 신랑이 해준 모닝 토스트,
우리 신랑이 해준 디너 떡볶이.
내가 백수임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