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2024년 12월 1일 일요일
화이트 샌즈를 보고 나오며 다시 차박을 하러 달리던 중, 우리 둘 다 차에서 잔 지 벌써 5일째라는 사실에 몸이 찝찝하고 지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따뜻한 침대에서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급하게 우리가 있는 주변의 호텔을 검색했고, 가격도 괜찮고 주방까지 갖춰진 ‘홈투(Home2 Suites by Hilton)’라는 호텔을 1박 예약했다.
급하게 예약한 호텔이라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시설이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호텔에 도착해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백짝꿍이 3분 카레를 데우고 밥 위에 멋지게 데코를 해주었으며, 라면까지 끓여주었다.
텍사스 독일 마을에서 사온 와인까지 곁들이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싶었다.
5일 동안 쌓인 피로가 한 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와인도 깔끔하고 좋았지만, 너무 피곤했던 탓에 많이는 마시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호텔 침대에 몸을 누이고 편안한 밤을 보냈다.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다음 날 아침, 무료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와플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었고, 메뉴들도 다양해 먹음직스러웠다. 오늘은 왠지 방에서 느긋하게 먹고 싶어서 이것저것 챙겨와 방에서 조식을 즐겼다.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호텔 체크아웃을 마쳤다.
이제 우리가 갈 목적지는 바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였다.
모뉴먼트 밸리는 미국 애리조나 주와 유타 주 경계에 위치한 거대한 붉은 사암 바위들이 늘어선 지역으로, 나바호족 보호구역 내에 있는 성지 같은 곳이다. 영화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며, 황량한 대지 위에 우뚝 솟은 붉은 바위들이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호텔에서 모뉴먼트 밸리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오늘은 오롯이 모뉴먼트 밸리로 향해 달리는 날이 되었다. 중간에 백짝꿍의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한 동네의 레이밴 매장에 들렀다.
그곳에서 백짝꿍에게 미국에서만 구매 가능한 모델인, 레이밴과 메타가 함께 만든 스마트 글라스를 사주었다. 선글라스 기능은 물론 음악도 듣고 통화도 할 수 있으며, 사진과 동영상 촬영, 심지어 AI 기능까지 갖춘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가격은 꽤 비쌌는데, 그만한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짝꿍은 이후로 이 선글라스를 정말 잘 쓰고 있다. 앞으로 이런 아이웨어가 더 보편화되는 날도 머지않아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길을 달리며 멋진 저녁노을을 보았고, 저녁 무렵이 되자 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한인마트에서 산 갓김치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정말 끝내줬다.(창문 밖으로 떠돌이 개가 우리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ㅠㅠ)
그렇게 밤늦게 모뉴먼트 밸리 근처에 도착해 차박을 했다.
내일 아침, 모뉴먼트 밸리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아침에 눈을 떠, 모뉴먼트 밸리 바로 앞에 위치한 호텔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더 뷰 호텔(The View Hotel)이었다. 이름처럼, 모뉴먼트 밸리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 적갈색 건물로, 그 자체로도 풍경에 잘 어우러져 멋진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건축물이 오히려 더 멋져 보였다.
해 뜨는 시간을 기다리며 호텔 안에 있는 기념품 샵에 들렀다.
샵 안에 전시된 수많은 소품들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뉴먼트 밸리의 전경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액자 속 그림 같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백짝꿍은 예전에 모뉴먼트 밸리를 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멋지다고 여러 번 이야기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실제로 와보니, 듣던 대로, 말문이 막힐 정도로 거대한 붉은 사암 바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12월은 비성수기라 그런지 방문객도 거의 없었다.
11월, 12월에 방문한 국립공원 입구에 직원조차 없는 경우도 많아서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이득이 있었다.
"세상에 비성수기와 성수기가 따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하고 선선한 날씨 덕분에 여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차를 타고 모뉴먼트 밸리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지구 속 화성'이라 불리는 곳이구나 싶었다.
정돈되지 않은 오프로드를 달릴 때 차가 덜컹거리며 엉덩이가 아플 정도였지만, 그 또한 재미였다.
붉은 사암 바위는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쉽게 부서졌고, 그 모래는 라면스프보다 더 부드러웠다.
이곳은 나바호족이라는 미국의 원주민 부족이 실제 거주하는 보호구역이기도 했다. 달리다 보니 어떤 나바호 남성분이 악세사리를 전시해놓고 판매하고 계셨다. 그분은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이었으며, 그가 만든 악세사리들은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특히 책갈피가 너무 예뻤는데, 그걸 사지 않은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중에 이런 걸 보면 꼭 사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모뉴먼트 밸리 내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공간에 도착해, 그곳에서 우리가 준비해간 짜장밥을 만들어 먹었다. 양파를 듬뿍 넣어 볶아서 짜장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이 멋진 풍경 속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미슐랭 음식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모뉴먼트 밸리를 떠나며,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달려가던 길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모뉴먼트 밸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RtShJwtNKTA?si=VJln55N6fP1jpDq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