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에서 마라탕을 먹고 쾰른으로 향하다.
오전 9시 10분, 독일 노더슈테트(Norderstedt) 숙소 앞
어젯밤 자기 전에 슬쩍 봐두었던 카페에 백짝꿍과 함께 걸어 나왔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아침의 여유였다.
따뜻한 카페라떼와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창가에 앉아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세계여행을 하며 바뀐 것이 있다면, 바로 아침 커피와 빵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원래도 커피는 좋아했지만 빵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유럽을 여행하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빵이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특히 백짝꿍은 카페인이 잘 맞지 않아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던 사람인데, 이탈리아 한 달 살기를 하고 난 뒤로는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이 좋아졌다고 했다.
여행은 이렇게, 사람의 입맛도 바꿔 놓는다.
오늘은 자전거로 유럽을 달린 지 7일째 되는 날이다.
어제는 함부르크까지 100km를 달릴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름도 참 어려운 이 동네에 숙소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남은 20km를 달려 함부르크로 향한다. 어제 80km를 달리고 나니, 20km쯤이야 굉장히 쉬울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의 일정은 단순하면서도 완벽하다. 함부르크에 도착해 마라탕을 먹고, 미리 예약해 둔 플릭스버스를 타고 독일 쾰른(Cologne)으로 이동하는 것.
쾰른까지는 버스로 약 6시간이 걸리는데, 우리가 굳이 쾰른으로 가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유로벨로 15를 타기 위해서다.
유로벨로 15는 ‘라인 루트(Rhine Cycle Route)’라고 불리는 자전거 길로, 스위스 알프스에서 시작해 독일과 프랑스를 지나 네덜란드 북해까지 이어진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거리 자전거 루트 중 하나다. 라인강을 따라 달리며 포도밭, 중세 도시, 고성들을 연달아 만날 수 있어 풍경이 정말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자전거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꼭 달려보고 싶어 하는 길. 그 길의 시작점 중 하나가 바로 쾰른이다.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여유를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서 오전 10시 30분쯤 출발했다.
함부르크에 있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 마라탕 집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캐나다에서 먹고 한 달 만에 먹는 마라탕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독일은 길가에 주차된 자전거도 많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실제로 독일은 유럽에서도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나라로, 전체 이동 수단 중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10~15% 정도라고 한다. 대도시일수록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출퇴근이나 일상 이동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니, 멀지 않은 거리라면 기름값 비싼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있던 동네에서 함부르크까지는 약 20km. 구글맵은 자전거로 1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이제 막 함부르크에 들어섰을 때, 큰 강과 나무들 사이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물 위로 낙엽이 떨어지고,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카약들. 그 풍경이 너무 평온해서 잠시 멈춰 바라보게 되었다.
함부르크는 독일 제2의 도시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항구 도시다. 엘베강을 따라 형성된 항구 덕분에 오래전부터 무역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유럽 물류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도시 곳곳에서 물과 다리를 쉽게 만날 수 있고, 산업적인 풍경과 여유로운 자연이 묘하게 공존한다. 사람이 많고 건물도 크지만, 이상하게 숨이 막히지는 않는 도시였다.
오후 12시 50분
멋진 다리와 강을 지나 드디어 마라탕 가게에 도착했다.
1시 30분까지 버스 터미널에 가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래도 마라탕은 포기할 수 없었다. 백짝꿍이 자전거를 주차하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동안, 나는 마라탕 재료들을 신나게 담았다.
세계여행을 하며 각 나라의 마라탕 집을 가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인데, 독일 함부르크의 이 마라탕 집은 매장이 정말 깨끗했고 화장실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밥과 따뜻한 차가 무료이고, 소스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최고였다.
잠시 후 나온 마라탕의 크기와 양에 백짝꿍은 깜짝 놀랐다.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먹었던 ‘David’s Master Pot’이라는 마라탕 집이 내 인생 마라탕인데, 여기가 그 집이랑 맛이 꽤 비슷했다.
자전거로 유럽을 달리며 처음으로 먹는 마라탕. 그동안의 고생이 한 번에 날아가는 맛이었다.
결국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많은 마라탕을 다 먹어 치웠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백짝꿍이, 세계여행을 하며 나와 함께 마라탕을 먹으러 다녀준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워졌다. 괜히 더 감동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도시가 커서 그런지 터미널도 복잡했고, 가는 내내 길을 헤매다 겨우 우리가 탈 승강장을 찾았다. 너무 촉박하게 도착해서 혹시 이미 가버린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10분 지연 안내가 떠 있었다.
잠시 후 우리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는 무려 체코 프라하까지 가는 장거리 버스였다.
1층 좌석이 2층보다 비싸긴 했지만, 6시간을 타야 하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자는 백짝꿍의 제안으로 1층 좌석을 예매했다. 우리 둘을 포함해 1층에는 고작 여섯 명 정도만 있었고, 넓은 테이블이 있어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편집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몇 번 정차하며 사람들이 내리고 나니, 어느 순간 1층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백짝꿍은 자기가 1층 좌석을 전부 예매했다고 장난을 쳤는데,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저녁 8시 20분, 드디어 독일 쾰른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완전히 진 늦은 시간이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자전거를 받아 들고 정신없이 페달을 밟았다. 어떻게 숙소에 도착했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해서 달렸다.
미리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쾌적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저녁도 못 먹었고, 쾰른이 맥주로 유명하다고 해서 겸사겸사 식당을 찾아 나섰지만, 가려고 했던 바는 문을 닫았고 문이 열려 있는 곳은 패스트푸드점뿐이었다. 결국 오늘은 그냥 쉬자며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qeF9GQNvE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