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전날, 나파밸리의 잔잔한 와인향을 뒤로한 채 저녁 7시쯤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요세미티로 가는 길목의 Rest Area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빛 아래 펼쳐진 길이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졌고, 기어이 4시간을 더 달려 밤 11시 30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요세미티의 밤은 차갑게 우리를 맞이할 거라 생각해 옷이며 이불까지 단단히 준비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공기는 적당히 싸늘했지만 매섭진 않았다. “다행이다”는 안도감 뒤로 밀려온 건, 아마 자연이 주는 환영의 인사였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번지는 고요함에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의 한 캠프그라운드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곰을 조심하라"는 어마무시한 표지판이었다. 미국 국립공원 곳곳에서는 종종 곰이 출몰한다고 한다. 처음엔 "정말 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이내 현실적인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곰은 단순히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동물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그런데 왜 곰인형은 그렇게 귀여운거지?)
어쩌면 캠프그라운드에 울려 퍼질지도 모를 야생의 울음소리가 약간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결국, "그래, 곰은 사진으로만 보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Mountains)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공원이며, 자연의 경이로움과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연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2년 전, LA에 머물며 여행할 때 요세미티 근처를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요세미티 안으로 발을 들인 건 처음이었다. 요세미티를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추천을 아끼지 않았다. 도대체 이곳은 어떤 곳이기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칭찬을 하는 걸까? 그런 호기심은 내 마음속 기대를 한껏 키워놓았다.
우리가 정한 캠프그라운드에 차를 세우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화장실을 찾으려고 다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내가 마주한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인공적인 빛은 단 하나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그런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나무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에 별들이 가득 반짝이고 있었다.
"저 거대한 그림자는 도대체 뭐지? 나무? 아니면 절벽?"
내 짝꿍과 온갖 추측을 주고받던 중,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이곳에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캠프그라운드로 돌아와 차 안에 몸을 뉘었지만, 아까 봤던 곰 경고 표지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설마 곰이 우리 차를 공격하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품은 채, 그렇게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했는지 아침 7시 30분쯤에서야 눈이 떠졌다. 차창 너머로 아침 햇살에 드러난 풍경을 보니, 밤새 우리를 압도했던 그 거대한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절벽이었다.
요세미티에 대해 미리 떠올렸던 이미지와는 달리, 이곳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다른 국립공원들처럼 주파수도 안 터지고, 휴대폰은 무용지물이 되며, 그저 자연과 동물, 그리고 소박한 시설뿐일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요세미티는 그런 내 기대를 비웃듯,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명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신호는 빵빵하게 터지고, 인터넷 속도는 도시 못지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믿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스타벅스! 게다가 스타벅스만이 아니었다.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다양한 식당과 편의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도 문명의 흔적이 이렇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덕분에 편리함과 신비로움이 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우리의 아침 루틴인 카페에서 책 읽고 글쓰기 시간을 가지기 위해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요세미티 한복판에서 아침을 여는 장소가 스타벅스라니,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었다.
스타벅스는 넓은 카페테리아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문을 마친 뒤, 우리는 카페테리아 중앙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차(Tea) 향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의 품속에서 맞는 현대적인 아침, 조금은 낯설었지만 이 또한 요세미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 같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큰 곳이었다.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요세미티의 풍경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 덕분에 더욱 아름다웠다. 빛줄기가 잎 사이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 같았다.
비성수기의 이른 아침이라 한적할 줄 알았다. 어제는 “우리만 요세미티에 온 거 아니야?”라는 농담까지 했을 정도였는데, 막상 아침이 되자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와 있어 놀라웠다. 자연이 가진 힘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에 들어오면 주파수가 전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이파이가 있긴 했지만 연결은 쉽지 않았다. 평소 휴대폰을 자주 보는 나에게는 처음엔 불편한 환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불편함이 오히려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억지로라도 휴대폰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이 환경 덕분에, 짝꿍과 지난 여행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고, 메모장을 꺼내 글을 적으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이곳 카페테리아에서는 아침에는 미국식 아침 식사를, 점심에는 다양한 메뉴를 판매한다. 주변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정말 맛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덩달아 배가 고파져 이것저것 주문해보았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아메리칸 아침 식사라니!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보다 이런 경험 자체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본격적으로 요세미티 탐방에 나섰다.
요세미티는 Yosemite Falls, Mirror Lake, Glacier Point, Tunnel View, Half Dome 같은 유명 명소들로 가득했지만, 정작 명소들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풍경들이 이미 장관이었다.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이 선사하는 웅장함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었다.
곳곳에 “곰을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보였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짝꿍과 “만약 진짜 곰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를 주제로 상상의 대화를 나누며 걷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긴장감 속에서도 웃음을 나누는 순간들 덕분에 요세미티는 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한다는 Yosemite Valley!
봄과 여름에는 폭포에 물이 가득 차 웅장한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물줄기가 약해지며, 겨울에는 거의 말라버린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멀리서 보아도 물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름이 아주 약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 폭포 근처에서 누군가가 바위 위를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이 많은 짝꿍이 “우리도 한번 올라가 보자!”고 제안했고, 결국 우리는 바위들을 딛고 천천히 위로 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정식 등산로가 아닌 바위 위를 걸어야 했고, 운동화가 자꾸 미끄러져 올라가는 내내 긴장감이 가득했다. 중간중간 “다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높이까지 오르진 않았지만, 물줄기 가까이 다다르자 풍경이 확 달라졌다. 바로 앞에서 보니 폭포의 물은 생각보다 꽤 풍부했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귀를 채웠다. 위험했지만, 용기를 내 올라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가까이 마주한 이 순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트레일 코스를 따라 다시 걸음을 옮기며 요세미티 박물관을 구경하고, 마켓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목적지인 웰컴 센터는 원래 1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여유롭게 둘러보며 걷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서야 도착했다.
웰컴 센터에서는 오늘 저녁 일몰을 어디서 보면 좋을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추천받은 다른 명소들도 메모해 두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 30분. 배가 고파지기도 했고, 짝꿍이 꼭 가보고 싶다던 Glacier Point로 향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 근처로 이동하던 중, 짝꿍이 아까부터 피자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우리가 알아둔 피자 식당이 웰컴 센터 근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미 거리가 꽤 멀어진 데다, 짝꿍이 내리자는 정류장은 주차장에서 더 떨어진 곳이라,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 걸어야 했다.
결국 아침에 갔던 식당으로 돌아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 점심 메뉴에 피자가 있었다. 피자를 먹고 싶은 짝꿍의 바람을 이렇게 쉽게 해결하게 될 줄이야! 다양한 메뉴와 함께 피자로 배를 채우고, 이제야 마음 편히 Glacier Point로 향할 수 있었다.
평소 먹는 것에 큰 욕심이 없는 짝꿍이 뭔가 먹고 싶다고 할 때면, 그가 정말 원하고 있다는 생각에 꼭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그가 먹고 싶다고 했던 피자가 있어서 정말 기뻤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일반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피자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화덕에 구워 나온 피자는 일반 피자집에서 파는 피자만큼이나 맛있었다.
참치 포케도 신선하고 맛있었으며, 여기서 파는 음식은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높다고 느꼈다. 사실, 요세미티에서 이렇게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모든 메뉴가 평타 이상을 쳤다.
만약 요세미티에 간다면, 여러 가지 음식을 챙기기보다는 요세미티 스타벅스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서 끼니를 해결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도치 않게 정말 든든하게 먹고 나서, 1시간 30분 정도 달려 4시 30분쯤 글레이셔 포인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요세미티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인 Half Dome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그 웅장함이 압도적이었다. 자연이 이토록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요세미티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경이롭고 장엄한 풍경이었다.
우리처럼 일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홍색과 빨간색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아름다운 일몰을 만끽했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맞아, 이게 바로 여행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일출과 일몰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내 짝꿍 덕분에 여러 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며 하루의 해가 뜨고 지는 순간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짝꿍, 정말 고마워!)
해가 다 지고 어두워지자 우리는 별을 보려고 기다렸지만, 이날은 구름이 많아서 그런지 그 유명한 요세미티의 별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별을 못 본 게 아쉬웠지만, 오늘 하루 요세미티에서 자연의 웅장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원래는 요세미티에서 하루 더 자고 내일 아침에 레이크 타호로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아고다를 통해 레이크 타호에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이 "24시간 체크인 가능"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짝꿍은 그래도 보통 호텔들이 오후 4시부터 체크인 가능하니까, 이곳도 그런 식으로 오후에 체크인할 수 있을 거라고 했고, 아마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다른 의미일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24시간 체크인 가능"이라고 하니 일단 가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4일동안 차박을 한 상태라, 빨리 호텔에 가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요세미티에서 레이크 타호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자정이 넘어서 도착하면 체크인 해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차 안에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고 나서 레이크 타호로 출발했다.
그런데 가던 도중, 오늘 너무 열심히 돌아다닌 탓인지 우리 둘 다 너무 피곤해서, 레이크 타호까지 1시간 정도 남겨두고는 결국 Rest Area에서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과연 레이크타호 호텔에서 내일 오전에 체크인을 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