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샌프란시스코에서 나파밸리로 가는 길은 약 1시간 30분 정도. 어젯밤에 미리 계획해 둔 대로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저녁을 먹고 약 1시간을 달려 Hunter Hill Rest Area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수도 없이 지나쳤을 그 Rest Area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차창 밖 풍경처럼 스쳐 가던 곳들이 이제는 ‘이곳에서 우리가 머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전혀 새로운 장소처럼 다가왔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느낌이었다.
미국의 광활한 대지에 맞춘 건지, Rest Area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휴게소와 맞먹을 정도였다. 평소 어디를 가든 화장실의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이곳의 화장실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칸마다 문이 없는 개방형 화장실이라니! 내심 다른 Rest Area는 이렇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빠르게 지나가자고 마음먹었다.
재빨리 세수와 양치를 마친 후 얼른 차로 돌아왔다. 이곳은 최대 8시간까지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 다이소에서 사둔 차량 용품들로 창문을 가리고 차박을 준비했다. 외부의 불빛도 거의 없고, 방해되는 소음도 없이 짝꿍과 나는 깊이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나파밸리로 향했다. 왠지 그곳에서는 스타벅스 대신 현지의 작은 로컬 카페를 가보고 싶었다.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짝꿍을 설득해, 미리 알아둔 나파벨리만의 로컬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정말 작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왠지 모르게 ‘로컬 카페’에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카페 라떼는 고소하고 묵직한 맛으로 딱 내 스타일이었다. 짝꿍이 배고파서 시킨 아보카도 토스트도 상큼하면서 달달한 맛이 일품이었다.
이후 점심시간이 되어서 인 앤 아웃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파밸리에서 웬 인 앤 아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1) 우리는 인 앤 아웃을 많이 먹어봤지만, 인 앤 아웃은 캘리포니아 주에만 있는 줄 알았기에, 이곳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맛보고 싶었다.
2) 나파밸리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할 계획이라, 그전에 묵직하고 든든한 점심이 필요했다.
점심을 신나게 먹은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 앤 아웃은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텍사스, 오리건, 콜로라도 등 서부와 남서부 여러 주에서도 만날 수 있는 체인이었다. 아직 동부에는 없으니, 나파밸리에서의 인 앤 아웃은 나름 특별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이곳 인 앤 아웃은 정말 깨끗했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바깥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혹시 인 앤 아웃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고 싶은 비밀 메뉴가 있다. 지금 오른쪽 사진에서 보이는 감자튀김 위의 독특한 소스가 바로 "애니멀 스타일" 소스다. 감자튀김에 풍부하고 묵직한 맛을 더해주고, 진한 풍미가 느껴져서 더 고소하게 즐길 수 있다.
인 앤 아웃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비밀 메뉴 옵션이 있다:
애니멀 스타일 (Animal Style): 패티에 머스터드 시즈닝을 더하고, 구운 양파와 피클, 시그니처 소스를 추가해 깊은 맛을 더한다.
프로틴 스타일 (Protein Style): 번 대신 양상추로 버거를 싸서 탄수화물을 줄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그릴드 치즈: 패티 없이 치즈와 채소로 구성된 버거로,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추가 무료 옵션: 치즈, 피클, 양파 등을 추가해 나만의 커스텀 버거를 즐길 수 있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월마트에 들러 차박 필수템인 가스버너와 부탄가스를 사고, CVS에서 건강을 위한 영양제도 구입했다.
이후에는 와이너리를 가기로 했다. “이왕 온 김에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를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구글에 검색해서 가장 1번째에 뜨는 “도멘 카르네로스(Domaine Carneros)”에 도착했다.
도멘 카르네로스는 나파밸리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특히 프랑스 스타일의 스파클링 와인과 피노 누아르로 유명하다. 이곳은 ‘메소드 샹파누아즈’라는 전통적인 샴페인 제조 방식을 사용해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데, 프랑스 샴페인 하우스인 테탱저(Taittinger) 가문에서 설립해 정통 프랑스 감성이 깃든 와이너리로 잘 알려져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아래, 대저택 같은 와이너리와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봐왔던 와이너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원래 이곳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넓은 야외 테라스에서 포도밭을 바라보며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야외 테이블은 예약이 있어야 앉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직원에게 와인 테이스팅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야외 테이블은 어렵지만, 실내와 야외 중간 정도의 테라스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그 자리도 나쁘지 않아 좋다고 답한 후, 직원이 준비하는 동안 15분 정도 밖을 둘러보며 경치를 즐겼다.
15분 후, 다시 직원에게 갔을 때 직원은 “마침 야외 자리가 하나 났다”라고 알려주었다. ‘혹시, 내가 속으로 앉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따라가 보니, 짝꿍에게 “여기 앉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이건 정말 행운이었다!
우리는 평소 스파클링 와인보다는 레드나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고, 사실 와인에 대해서도 잘 아는 편은 아니다.
나파밸리의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플라이트(Wine Flight)"라는 시스템을 통해 3~6종의 다양한 와인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플라이트의 가격은 포함된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스파클링 와인만으로 구성된 $40짜리 와인 플라이트 하나와, 가장 고급 와인들로 구성된 $65짜리 와인 플라이트 하나를 주문했다.
우리는 평소 스파클링 와인의 달콤하고 가벼운 느낌을 선호하지 않는데, 이곳의 스파클링 와인은 전혀 달지 않았고, 버블의 깊이와 밀도가 뛰어나서, 드라이하면서도 상쾌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달다고 설명해 주신 스파클링 와인조차 깔끔한 여운만 남겼다.
처음엔 이곳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마치고 다른 와이너리도 가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한 플라이트의 양이 많아서 약간 취기가 돌았다. 그 덕분에 완벽한 뷰와 날씨 속에서 각자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와인을 즐기다 보니 출출해져서 나파밸리의 유명한 음식을 찾아보았다. 나파밸리는 바닷가에 있진 않지만, 와인과 잘 어울려서인지 굴이 유명하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양하게 즐기지 못했던 굴이 아쉬웠던 우리는 나파밸리의 유명 마켓인 Oxbow Public Market에 위치한 Hog Island Oyster Co. 를 찾아갔다.
우리는 6가지 종류의 굴을 맛볼 수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각각 비슷하게 생겼지만 질감, 향, 맛이 모두 달라 신기했다. 비린 맛은 전혀 없고 싱싱함이 가득했으며, 테이블마다 준비된 다양한 핫소스를 뿌려 즐기다 보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차가운 굴만 먹기엔 아쉬워 이곳의 유명한 "맨해튼 스타일 크램 차우더"도 시켰다. 이 차우더는 토마토 베이스가 특징인데, 굴을 다 먹을 즈음에 차우더가 나왔지만 우리가 주문한 것이 아닌 크림 크램 차우더였다.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주문이 잘못 들어갔네요. 이건 그냥 드시고 계시면 주문하신 걸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라고 했다. 덕분에 뜻밖의 행운으로 크림 차우더까지 공짜로 맛볼 수 있었다!
이렇게 두 가지 스타일의 차우더를 즐겼는데, 그동안 먹어왔던 잘게 썬 조개가 들어간 차우더와는 달리, 이곳 차우더에는 통째로 여러 개의 조개가 들어가 있어 훨씬 풍성하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굴의 맛에 푹 빠져 이번엔 Grilled Oyster도 주문했다. 배가 부르긴 했지만, 이곳의 음식들은 정말 나파밸리를 다시 방문하게 만들 만큼 훌륭했다.
밥을 먹고 나서 마켓을 둘러보던 중, 짝꿍이 산타바바라 파머스 마켓에서 직접 피스타치오 나무를 기르고 판매하는 할아버지에게서 샀던 피스타치오가 있어 정말 반가웠다. 여기까지 납품할 정도라니, 할아버지가 꽤 큰 농장을 운영하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고, 순박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사실은 엄청 부자인 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했다.
마켓을 나서면 주차장 바로 앞에 호수가 펼쳐지는데,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실, 2년 전 LA에 살 때는 홈리스도 많고 치안이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미국의 지역들이 다 그럴 거라는 착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파밸리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여행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모두 사라졌다.
기대 이상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나파밸리.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날 요세미티 일정이 있어서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나파밸리는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요세미티의 여행은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