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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존 Dec 12. 2024

미국 DAY8_(2)사랑할 수 밖에 없는 레이크타호

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241107


다음날 아침은 느긋함 그 자체였다. 여행 중에는 늘 일찍 깨어나 움직이곤 했는데, 간만에 늦잠을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짝꿍과 함께 4일간의 차박 생활 동안 차곡차곡 쌓인 빨랫감들을 챙겨 근처 코인 세탁실로 향했다.

세탁실에 도착해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동전을 투입하자, 돌아가기 시작하는 세탁기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레이크타호는 워낙 안전한 지역이지만, 그래도 세탁기를 그냥 두고 떠나는 건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세탁실에 놓인 낡은 의자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짝꿍과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의 계획은 즉흥적이었고, 그래서 더 설레곤 했다.


빨래가 세탁기 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상쾌해졌다. 앞으로의 차박 일정은 아직도 길게 남아 있었지만, 쌓인 빨래들이 새롭게 태어나듯 깨끗해지는 광경은 묘한 희망을 안겨줬다. 세탁이 끝나고 뽀송뽀송해진 빨래를 꺼낼 때는 마치 여행의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했다.


짐을 챙기고 레이크타호의 대표 명소, 인스퍼레이션 포인트로 차를 몰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변함없이 장엄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레이크타호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처럼 반갑고, 동시에 익숙했다. “여기야, 우리가 다시 왔어!”라는 마음으로 속삭이며 바라본 풍경은 여전히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짝꿍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전망대 반대편도 예쁘다는 짝꿍의 말에 호기심이 동해 발걸음을 옮겼다.

반대편에 도착하니, 눈앞에는 나무에 가리지 않은 탁 트인 호수가 펼쳐졌다. 넓고 맑은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하늘을 담아내고 있었다. 어디서 보든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호수는, 마치 우리에게 "이제야 제대로 봤지?"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문득 레이크 타호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짝꿍과 눈이 마주치자, 두 말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즉흥적으로 "오늘은 레이크 타호 드라이브 데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호수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앞으로 이어질 차박 생활을 위해 여기저기 마트를 돌아다니며 알뜰하게 장만한 캠핑 용품들. 처음으로 그걸 활용해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근처 Public Park을 찾아 오늘의 점심 메뉴로 준비한 스테이크를 구웠다.


어제 짜서 많이 남긴 도미노피자의 파스타도 챙겨 와, 스테이크와 샐러드, 파스타를 한 상 차려냈다. 최소한의 재료로 만든 스테이크라 맛이 대단히 훌륭한 건 아니었다. 딱 고기 본연의 맛 정도? 하지만 여기 레이크타호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순간 자체가 특별했다.


맛보다는 분위기였다. 눈앞에 펼쳐진 호수 풍경, 캠핑 도구 위로 퍼지는 고기 냄새, 그리고 짝꿍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레이크타호에서 먹는 스테이크라니, 이런 건 또 언제 해보겠어?” 그렇게 특별한 맛이 없는 스테이크도 추억의 한 조각이 되었다.

레이크타호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하루를 보낸 후, 피곤해 보이는 짝꿍을 위해 내가 운전대를 잡고 호텔로 돌아왔다.


잠시 쉬며 재충전한 뒤, 저녁에는 레이크타호만의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미리 찾아둔 호텔 근처의 맥주 양조장과 카지노를 방문하기로 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찾아간 양조장이었는데,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전형적인 미국 펍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엔 이곳에서 직접 만든 맥주를 한 잔씩만 맛보려 했는데, 지난번 나파밸리에서의 와인 테이스팅처럼 Beer Flight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종류의 맥주를 소량씩 맛볼 수 있는 구성이라니! 맥주 한두 잔 가격에 네 가지 맛을 볼 수 있다니 정말 괜찮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짝꿍과 나는 이곳에서 제조한 맥주 중 입맛대로 총 여덟 잔을 골랐다. 각각 한 잔씩 돌아가며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선택한 Sour Beer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피클과 화장품을 섞은 듯한 독특한(?) 맛이라니. 그 맛에 놀라 다른 맥주들까지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낯선 경험 하나하나가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에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맥주를 계속 맛보다 보니 “이러다 하루 종일 먹겠는데?” 싶어졌다. 그래서 짝꿍의 제안으로 가위바위보 맥주 게임을 시작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이 지정한 맥주를 마시는 간단한 룰이었다. 덕분에 맛없는 맥주부터 순식간에 사라졌고, 깔깔거리며 여덟 잔의 맥주를 모두 비웠다.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칼바람을 뚫고 근처 카지노로 향했다. 나이아가라나 라스베가스 같은 북적이는 대형 카지노와는 다르게, 이곳은 한산하고 조용해 조금 으스스하기도 했다.


우리는 총 20달러를 정해 짝꿍과 내가 각각 10달러씩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짝꿍이 5달러짜리 게임을 두 번 시도했는데, 순식간에 10달러가 증발했다. “내 차례다!” 하고 나선 나는 약간의 운빨을 믿으며 5달러짜리 게임에 도전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 내 5달러도 사라지고 말았다.


15달러를 날린 후 깨달았다. “여기선 돈 쓰는 게 의미가 없다!” 결국 남은 5달러는 포기하고 카지노를 나왔다.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라스베가스에서 제대로 하리라 다짐했다.


카지노를 나오며 짝꿍은 돈을 날렸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 돈으로 즐겁게 게임한 거잖아?”라며 그를 달랬다. 생각하기에 따라 아까운 돈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앞으로 이런 재미있는 경험들에 선뜻 돈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깝지 않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야외 자쿠지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이어질 5일간의 차박을 준비하며 일찍 잠에 들었다.


평온하고 행복으로 가득했던 레이크 타호. 언제든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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