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지 아직은 답이 없다.
최근 며칠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일 테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평온한 새벽의 서늘한 공기를 들이키며 뇌를 깨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다는 것. 그 분노를 추적하면 그곳엔 을의 위치로서 언제나 내가 있었다.
그 분노의 추적 Scene속엔 난 언제나 피해자였다.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했고, 언제나 상대방의 마음에 맞는 말을 해야만 했다. 가장 필요한 건 독심술이었고, 걸레 같은 혀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들을 무한히 담아내야만 하는 쓰레기통임과 동시에 그 처리는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었다. 내면의 화가 내 사람에게 향할 때면, 그 죄책감 또한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공기는 무거워졌고, 나는 메말라갔다. 비 내리는 산책길은 추적한 아스팔트 길일뿐이었고, 맑고 투명하고, 때론 그러데이션으로 인상 깊었던 하늘의 변화엔 무심해졌으며, 나를 향한 타인의 행동에 무관심해져 갔다.
그래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가정을 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됐을 것이라고.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구조 속에서 인간의 성찰 따윈 없었을 것이다. 돈이 중요했을 것이며, 타인의 사정 따윈 그저 후속 관리 대상일 뿐이었을 것이다. 인성이 뒤쳐진 나이 든 인간은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대학, 군대 그리고 사회에서 수없이 봐왔다. 돈과 지위에 억눌린 구조 속 약자를 돈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고, 구속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약자들의 칭찬 어린 말들이 점점 위로와 진실로 들렸을 것이고,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발견한 순간, 그렇게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이기적이 되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기적이 아닌 당연한 이 사회의 순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합리화할 수 있는 돈과 직위는 스스로와 타인의 경계를 쉽게 허물도록 하는 출구가 되었을 것이다. 이미 인성을 논하긴 늦었고 그것을 스스로도 깨닫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성의 부족함과 인간존중에 대한 무지함을 행동으로 보이며 우월감을 가지려 했을 것이다. 돈과 사회적 지위로 본인을 위로하며 타인을 무시하며 짓밟는 행동을 아마 자신도 모르게 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술 한잔, 밥 한 끼 하며 타인의 찢어진 부위를 눈앞에 두고 동정의 술잔과 위로를 건네며, 자기만족 위한 행동과 언어를 혀로 뱉으며, 당연시된 이기심이 녹아든 행동을 원할 때까지 했었을 것이다.
결국 약자 또한 대부분이 물들어 나이를 먹고 비슷한 행동을 해갈 것이다.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 나무란다 라는 속담처럼, 결국 남을 더럽히고 비난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흔들리고 곧 부서질 것만 같은 본인의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결국 이들은 합리화로 인한 비겁함과 무지함을 무덤까지 안고 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배설 해 놓은 모든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결국 약자의 몫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인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곧 인간의 됨됨이이며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럼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나약한 약자로써,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할 용기와 지혜를 구걸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그 인성을 갖추려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 밖에..